“너는 너의 삶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진부한 갱생의 메아리처럼 들리는 이 문구는 뜻밖에도 릴케의 ‘고대 아폴론의 토르소’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올림포스 12신 중 하나로 태양의 신이라 불리는 아폴론은 대개 머리엔 월계관을 쓰고 손에는 리라를 든 아름다운 용모의 젊은이로 묘사되는데, 머리도, 팔다리도 없는 토르소의 아폴론을 두고 릴케는 이렇게 말한다. “이 토르소에는 너를 바라보지 않는 부분이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단지 두 개의 눈망울이 아니라 토르소 전체가 그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 온몸이 눈이라는 역설 앞에서 릴케는 신음하듯 읊조리게 된다. 너는 너의 삶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릴케의 그 토르소는 지금 박물관에 갇혀 누구도 바라보지 못하는데 지난 50여 일 수많은 ‘너’의 삶은 바뀌고 말았다.

처음 줄줄이 기일변경통지서를 받을 때만 해도 숙제를 덜 했는데 때마침 개학 연기 소식을 접한 철부지 아이처럼 당장의 해방감이 더 컸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곧 지름길로 애용하던 법원의 소위 쪽문들이 폐쇄되더니, 인근 사무실의 확진자 발생과 그 건물 사용자들의 자가 격리 소식이 속속 전해지면서 불안도 공포도 눈앞에 닥친 현실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일시 폐쇄 명령은 내 사무실이 있는 건물에도 내려졌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니 타 지역으로부터의 선제적 배려도 속속 답지했다. 상대방 소송대리인은 ‘소송대리인이 대구에 있는 관계로’라며 기일연기신청서를 제출해 주었고, 소규모라 정족수가 문제되는 위원회에서도 알아서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위원에게 대신 부탁해주었다. 그렇게 단 하나의 재판도 없이, 대구에서 내내, 3월의 대부분을 ‘집콕’으로 보냈다.

“우리가 매일 8시간씩 할 수 있는 건 일밖에 없다. 혹은 매일 8시간씩 해야 한다면 모든 것이 일이 된다”는 포크너의 말처럼 그렇게 보낸 3월은 평소 그렇게도 갈망하던 삶의 한 형태가 일이 되어가는 낭패와 이에 대한 필사적 저항으로 점철된 시간이었다.

마냥 빈둥거리면서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것이 일이 되지 않게 하려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시키지도 않은 기록을 뒤적이고 판례도 찾아 읽는 자신을 발견하곤 괜스레 헛웃음이 났다. 여기저기서 같이 밥 먹고 웃고 떠들고 왁자하던, 눈물나게 평범한 일상이 너무나 그립다고 말한다. 줬다 빼앗는 놈이 제일 나쁜 놈이라는데, 우리 모두는 뺏기고 나서야 무엇을 받아쥐고 있었는지를 알게 된 망연자실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 순간 예외도 없이 끝도 없이 삶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죽비처럼 내리꽂히는 시선이 뿔 달린 바이러스의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바이러스에 의해 소환된 토르소의 시선, 그 준엄한 시선 앞에 저마다의 품위와 조용한 자긍심을 부여받고자 하는 열망이 함께 한다는 것을 믿는다.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의술의 신이기도 한 아폴론의 토르소이기에 더더욱.

 
 
 
/김계희 변호사·대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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