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2017. 2. 16. 선고 2016도13362 전원합의체 판결 -

1. 공소사실의 요지와 사실심의 판단

피고인 등이 토지의 소유자인 피해자 오OO에게 토지거래허가 등에 필요한 서류라고 거짓말하여 위 피해자로 하여금 근저당권설정계약서 등에 서명, 날인하게 하고, 위 피해자의 인감증명서를 교부받은 다음, 이를 이용하여 위 피해자 소유의 토지에 관하여 피고인을 채무자로 하여 채권최고액 합계 10억 5000만 원인 근저당권을 대부업자 등에게 설정하여 주고, 7억 원을 차용함으로써 동액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였다는 것 등으로 기소된 사안에서 제1심과 항소심은 위 사기 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2. 대법원의 판단

가. 종전 판례의 태도

사기죄는 타인을 기망하여 착오에 빠뜨리게 하고 그 처분행위를 유발하여 재물, 재산상의 이득을 얻음으로써 성립하는 것이므로, 여기서 처분행위라고 하는 것은 재산적 처분행위를 의미하고 그것은 주관적으로 피기망자에게 처분의사 즉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있고, 객관적으로는 이러한 의사에 지배된 행위가 있을 것을 요한다.

나. 대법원의 다수의견

1) 사기죄의 본질과 그 구조, 처분행위와 그 의사적 요소로서 처분의사의 기능과 역할, 기망행위와 착오의 의미 등에 비추어 보면, 비록 피기망자가 처분행위의 의미나 내용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피기망자의 행위가 직접 재산상 손해를 초래하는 재산적 처분행위로 평가되고, 이러한 행위를 피기망자가 인식하고 한 것이라면 처분행위에 상응하는 처분의사는 인정되는 것이다.

2) 이와 달리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가 인정되려면 피기망자에게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판시한 대법원 판결은 이 판결과 배치되는 범위에서 이를 변경한다.

3) 피기망자가 행위자의 기망행위로 인하여 착오에 빠진 결과 내심의 의사와 다른 효과를 발생시키는 내용의 처분문서에 서명 또는 날인함으로써 처분문서의 내용에 따른 재산상 손해가 초래되었다면 그와 같은 처분문서에 서명 또는 날인을 한 피기망자의 행위는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에 해당한다.

4) 아울러 비록 피기망자가 처분결과, 즉 문서의 구체적 내용과 그 법적 효과를 미처 인식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어떤 문서에 스스로 서명•날인함으로써 그 처분문서에 서명 또는 날인하는 행위에 관한 인식이 있었던 이상 피기망자의 처분의사 역시 인정된다.

 

3. 판례의 의의

가. 종전 판례와 변경 후 판례는 사기죄의 성립에 피기망자의 처분의사와 처분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합니다. 그리고 양 판례는 처분행위는 표시행위라고 본 점에서도 같습니다.

나. 그러나 종전 판례는 2005. 5. 27. 2004다43824 판례(사기에 의한 의사표시란 타인의 기망행위로 말미암아 착오에 빠지게 된 결과 어떠한 의사표시를 하게 되는 경우이므로 거기에는 의사와 표시의 불일치가 있을 수 없고, 단지 의사의 형성과정 즉 의사표시의 동기에 착오가 있는 것에 불과하며, 이 점에서 고유한 의미의 착오에 의한 의사표시와 구분되는데, 신원보증서류에 서명날인한다는 착각에 빠진 상태로 연대보증의 서면에 서명날인한 경우, 결국 위와 같은 행위는 강학상 기명날인의 착오(또는 서명의 착오), 즉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의사와 다른 법률효과를 발생시키는 내용의 서면에, 그것을 읽지 않거나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채 기명날인을 하는 이른바 표시상의 착오에 해당하므로, 비록 위와 같은 착오가 제3자의 기망행위에 의하여 일어난 것이라 하더라도 그에 관하여는 사기에 의한 의사표시에 관한 법리, 특히 상대방이 그러한 제3자의 기망행위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가 아닌 한 의사표시자가 취소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민법 제110조 제2항의 규정을 적용할 것이 아니라, 착오에 의한 의사표시에 관한 법리만을 적용하여 취소권 행사의 가부를 가려야 한다.)와 같이 민법 제109조 착오와 제110조 사기를 구분하는 전제에서, 피기망자의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은 피기망자의 진의(즉 내심적 효과의사)가 표시상의 효과의사(판례가 말하는 처분결과는 표시상의 효과, 민법 제107조 제1항 본문의 표시주의에 따라 실제로 발생한 법률효과를 의미합니다)와 같을 때의 그 피기망자의 진의이고, 피기망자의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피기망자의 처분의사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진의와 표시상의 효과의사가 같을 때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인정되고 처분의사가 인정되어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하였습니다. 간단히 말해 의사와 표시가 일치해야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하였습니다.

다. 이에 반하여 변경 후 판례는 처분의사는 표시상의 효과의사이고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본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서명사취 사안에서 종전 판례에 따르면 피기망자의 진의는 표시상의 효과(처분결과, 예컨대 근저당권 설정)의사가 아니라 다른 의사(예컨대 토지거래허가를 받음)이어서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 즉 처분의사가 인정되지 않아 사기죄가 성립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변경 후 판례에 따르면 피기망자의 처분의사는 표시의사인데 표시행위(예컨대 근저당권설정계약서의 서명 또는 날인)가 존재하고 표시의사는 표시행위가 있으면 의사무능력자 등이 아닌 한 별도의 검토 없이 인정되므로 처분의사가 있고 사기죄가 성립합니다.

 
 
 
/류한호 변호사

경기북부회, 지인 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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