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복 위에도, 양복 위에도, 수의 위에도 마스크를 쓴 법정 풍경이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다. 나도 익숙하게 마스크를 쓴 채로 법정에서 재판 내용을 노트북에 받아 치다가 “쾌적하다”고 느끼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10년차 기자가 돼서야 처음 법정 취재를 경험한 나는 이곳이 몹시 불편하다고 느꼈다. 바로 옆 좌석에 ‘익명의 일반인’이 있는 취재현장은 처음이었다. 중요한 인물의 말을 받아 치기 위해 길바닥에 주저앉아 노트북을 펼칠 때, 기자의 옆에는 보통 다른 기자가 있다. 이 장면에서 익명의 일반인은 한 무리 기자들로부터 몇 걸음 떨어져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내는 ‘배경’일 뿐이다. 반면 법정 방청석에서 이 배경은 나와 너무 가까이 있다.

흔치 않은 일이긴 하지만 이 배경은 가끔 나를 침범한다. 어떤 이들은 때로 무례하게 내 노트북을 건드린다. 화를 내거나 빈정거리기도 한다. 묘한 냄새를 풍기거나 이상한 소리를 낼 때도 있다.

사실 이들은 내가 기자 초년부터 ‘외면하는 방법’을 익혀 온 대상이기도 하다. 기자라고 말을 걸면 억울하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사연을 들어보면 개입할 수 없는 일이다.

그걸 설명하면 되레 화를 내면서 윽박지른다. 힘들다고 호소하지만 그 목적은 돈을 뜯어내는 것인 사람도 있었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그들을 회피하고 무시하는 기술을 습득한다. 지금도 주기적으로 자신의 생활고와 억울한 사정을 내게 문자메시지로 호소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답장하지 않는다.

당연히 마음 한구석에 죄책감이 남는다.

내가 외면한 이들 중에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지는 않았을까? 그때 도움을 받지 못한 이가 피고인 혹은 피해자가 돼서 지금 법정 방청석에 앉아 자신을 회피한 나를 저주하고 있지는 않을까? 목소리를 대변해야 할 약자들로부터 멀어질수록 내 마음이 편안하다는 현실은 날 고민스럽게 한다.

전염병의 와중에 이들과 주로 만나는 ‘작은 사건’들의 재판이 미뤄졌다. 띄엄띄엄 앉은 마스크 쓴 법정은 음압병실이기라도 한 것처럼 안도감을 준다.

하지만 전염병이 물러간 이후가 문득 걱정스럽다. 경제는 어려워지고 있고, 세계는 문을 닫아걸고 있다. 어려운 사람들의 삶은 더 어려워지고, 약자들을 향한 혐오와 차별은 더 심해질 듯하다. 그럴 때 법정을 찾아오는 이들은 더 위험한 벼랑 끝에서 더 깊은 원망을 품고 있지 않을까. 그들을 회피하면서 일상의 관성에 슬쩍 얹어 미뤄 온 죄책감과 불편함은, 그때 더 커져서 돌아오지 않을까 싶다.

/고동욱 연합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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