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에서 편집인으로>

사무실로 배달돼 온 변협신문을 받아보기만 하다가 올해는 공보이사로 편집위원이 되어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가까이에서 본 변협신문은 정말 많은 분들의 수고로 채워졌습니다. 매주 회원들에게 가장 필요한 메시지는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에서부터, 변협에 알린 회원들의 목소리를 충실하게 전달하고, 달라지는 법제도와 전문 판례까지 공부할 수 있는 그야말로 백과사전 같은 역할을 해내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각지에 계신 변호사님들의 이야기를 가장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내 이야기 같은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같이 울컥하고, 같이 기뻐하기도 했습니다. 귀한 쉬간을 내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제가 먼저 가장 좋은 독자가 되어보려고 합니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고 괴테가 말했다지요. 어려운 이 시기, 우리 변호사들이 가야할 방향을 보여주는 변협신문이 되기를 바랍니다.

/양소영 편집인(2019~현재)

 

<열린 신문, 변호사의 ‘변호인’이길 소망합니다>

십수년 전 대한변협신문의 원고청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2000자 칼럼이라는데 글쓰기를 업으로 살아왔음에도 주제를 정하고, 매수에 맞춰, 정해진 시간 내에 원고를 보내는 게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누가 이 글을 읽기나 할까 걱정도 했지만 때론 공감과 격려를 보내준 분도 있었습니다. 신문은 이미 아는 인연을 기억하게도 하고, 때론 또다른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여러분에게 대한변협신문은 어떤 의미일까요.

대한변협신문이 20돌을 맞습니다. 모든 변호사님들이 한 번 이상은 대한변협신문의 필자가 되거나, 인터뷰어 또는 인터뷰이가 돼보시는 건 어떨까요. 대한변협신문은 사상과 이념, 정파를 뛰어넘는 열린 신문을 지향합니다. 여느 때보다도 힘든 시장환경 속에서도 함께 희망의 싹을 키워나가는 변호사님들의 진정한 ‘변호인’이길 소망합니다.

/김택수 신문편집위원장(2019~현재)

 

<진화하라, 단 핵심가치를 보존하라>

100세 시대라고 한다. 일생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경험할까? 예전에는 꿈조차 꾸지 못했던 일들이 시도 때도 없이 펑펑 터진다.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상을 휩쓰는가 하면 BTS의 노래가 빌보드차트를 석권한다. 그런가 하면 IMF사태니 글로벌 금융위기가 덮치기도 한다. 최근에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고 있다.

이제 정말 인류의 종말이 가까이 온 것일까? 아니다. 세계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진화하고 있는 것이고 내일도 그럴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살아남아 내일을 기약할 수 있을까. 찰스 다윈이 말했듯이 “번식하라. 변화하라. 강자는 살게 하고 약자는 죽게 하라”에 해답이 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진화하되 핵심가치는 보존해야 정체성을 지킬 수 있다. 바로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그것이다. 이제 성년이 된 변협신문의 존재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윤상일 전 편집인(2007~2008)

 

<대한변협신문 20년에>

당시 대한변협신문 편집을 맡고서 회의가 심했다. 8면짜리 타블로이드, 발송비 포함 4억 원 이상 예산이 쓰이지만, 비닐봉투도 개봉되지 않은 채 휴지통에 들어가기 십상이었다. 전원책 변호사와 진보논객, 진중권의 지상논전을 한 면 통으로 싣기로 했다. 전 변호사도 동의했다. 반응이 좋았다.

협회장은 성명서에 집착하셨다. “조금만 기다리시라, 중앙 일간지에 크게 인터뷰 나가게 해 드리겠다”고 말렸다, 공보이사는 협회장의 흉중을 읽고 협회장의 혀처럼 놀아야 한다. 그런데 뻗대는 일이 잦았으니, (회규상 공보이사 고유업무로 규정된) ‘대한변협신문 편집인’과 ‘인권과정의 편집위원장’에서 잘렸다. 10개월 만엔가 협회장과 결별하였다. 대한변협신문, 20년 동안 잘 버텼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그 시절 그 인물들이 새삼 그립다.

/홍승기 전 편집인(2009)

 

<대한변협신문의 성년식(20주년)을 축하합니다>

대한변호사협회 공보이사 겸 신문편집인(2013. 2. ~ 2015. 2.)으로서 감회롭게 신문의 20주년을 축하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들을 떠올려 보니, 드디어 우리 신문의 기사가 네이버에서 검색이 되기 시작한 것, 전문기자 출신인 박신애 편집장과 함께 일한 것(내가 편집인일 때 그녀가 그만두면서 이 제도가 사라졌다), 권력을 이용하여 변협의 숨은 역사를 임기를 마친 이후에도 상당기간 연재하였던 것 정도이다.

요즘도 책상에 배달된 법률신문보다 먼저 손이 간다. 이렇게 쓰다 보니, 내 글의 표현으로 법률신문의 자존심 ‘쎈’ 기자들로부터 사과 요구를 받는 설화를 겪은 것도 떠오른다. 모두 추억이다. 나는 추억의 영역에 있지만, 현재 대한변협신문의 역사를 쓰고 있는 신문편집위원들과 그 뒤에서 고생하는 홍보팀원들의 노고에 격려와 감사를 드린다.

/박형연 전 편집인(2013~2015)

 

<’변호사25시’도 대한변협신문의 20주년을 축하합니다>

제가 ‘변호사25시’ 연재를 시작한 것이 변호사 2년차, 2006년이니 참 오랜 기간 대한변협신문과 함께 하고 있네요.

그간 대한변협신문은 더 부드러워지고 회원들과 친근한 매체가 된 것 같습니다. 부족하지만, 가끔 ‘이번 만화 재미있다’ ‘내용이 와 닿았다’는 변호사님들 말씀에 감사와 기쁨을 느낍니다. 회원들로부터 더욱 사랑받는 대한변협신문이 되길 바라고,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파이팅!

/이영욱 변호사, 변호사25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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