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화 ‘컨테이젼(2011)’이 역주행하고 있다. 바이러스로 인해 패닉에 빠진 사회가 이를 극복해가는 이야기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있다. 가짜뉴스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에 의해 잘못된 정보가 유통되면서 혼란은 가중된다.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는 우리에게도 가짜뉴스는 남 이야기가 아니다.

가짜뉴스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선화공주를 곤란에 빠뜨렸던 무왕의 서동요도 한 예다. 그러나 가짜뉴스가 현실적으로 문제된 것은 통신망의 발달로 사람들이 공간을 넘어 실시간으로 묶여있는 오늘이다. 가짜뉴스의 해악을 알면서도 그간 논의가 더뎠던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 수도 없다. 가짜뉴스가 개인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형사처벌하면 되지만, 사회를 상대로 한 경우 건전한 여론형성과 합의를 막고 구성원 간 신뢰를 저하시키며, 나아가 공동체를 해체하기 때문이다.

가짜뉴스는 언론을 통한 것뿐만 아니라 소셜네트워크상의 정보도 포함한다. 그래서 뉴스보다는 허위조작 정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입증 가능성에 달려있다. 그런데 세상 일이 복잡하듯 일목요연하게 진위가 가려지지 않는 것도 다반사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경우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누가 봐도 명백히 가짜라고 알 수 있는 것은 실질적 규제 필요성을 부인했다.

그렇다면 진위가 아직 가려지지 않은 정보는 어떻게 할까. 미국은 자율규제방식의 팩트체크를 선호한다. 법적 전통도 있지만 주요 소셜네트워크가 자국기업이라는 것도 한 이유다. 상대적으로 유럽은 법령을 제정해 대응했다. 명백한 가짜정보는 48시간 이내에 차단 또는 삭제하고, 진위 판별이 어려운 것은 일주일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주고 자율규제기구에 이관하기도 한다. 해당 정보에 대해서는 심의 중이라는 라벨을 붙인다.

하지만 쏟아져 나오는 정보량을 감당하기 어렵다. 따라서 국가의 직접규제 외에 필요한 것이 정보서비스제공자가 주도하는 자율규제시스템과 정보이용자의 판별능력을 배양하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다. 자율규제가 활성화되고 이용자의 판별능력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국가규제 영역은 줄어든다. 자율규제의 객관성 유지를 위해서는 제3의 팩트체커들과의 파트너십도 중요하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의무화 할 필요가 있다. 혼돈의 현실에서 진실을 찾아낼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으로, 이는 시민교육과도 맞닿아 있다.

가짜뉴스를 규제하는 것은 그 악용가능성 때문에 민감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그러한 시대는 지나왔으며, 세계 최고의 정보통신망은 자유의지의 굳건한 기반이 되고 있다. 이제는 공동체를 위협하는 가짜뉴스에 맞서야 한다. 영국의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는 “선의 방관이 악의 승리를 가져온다”고 이야기 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가짜뉴스 대응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최승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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