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법률을 제정하거나 기존 법률을 개정할 때는 그 법률(안)의 취지와 내용을 설명하는 ‘입법이유서’라는 것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것이 정상적인 입법이다. 그러나 우리 입법 현실을 살펴보면, 의원입법은 물론이고 정부입법까지도 ‘입법이유서’가 없는 부실 입법이 적지 않다.

과거 우리나라는 선진 여러 나라들의 법을 베낀 모방입법을 통해 국가의 발전을 모색해왔다. 일종의 ‘따라잡기(Catch-Up)’ 성장모델이다. 선진국의 제도나 법률은 별다른 분석 없이 그저 모방만 하면 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예를 들어 미국이나 일본의 법률을 모방하여 입법하는 경우 우리 나름의 입법이유서가 없더라도 해당 국가의 입법이유서와 그 나라가 그때까지 경험한 판례와 학설을 참고하면 우리 법률을 해석하고 집행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 없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어떤 법률을 처음 제정할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입법이유서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해당 법률을 적용하고 집행해야 할 사법 및 행정 영역에 불필요한 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해석상의 혼란을 해소하기까지 소요되는 비용은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전가되고 많은 희생이 뒤따른다.

최근 문화산업이나 지적재산 관련 법률 중에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입법이 늘어나고 있다. 다양한 산업이나 서비스에 ‘진흥’이란 명칭을 붙여 제정한 각종 ‘진흥법’들이 그 예이다. 바로 얼마 전 부정경쟁방지법을 개정하여 ‘거래 교섭 단계에 제공된 아이디어’를 보호하고자 신설한 법조항 ‘제2조 제1호 (차)목’은 또 다른 예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러한 법률이나 신설 조항에 입법이유서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달랑 A4 용지 서너 페이지 분량으로 ‘입법취지’를 설명해놓은 자료가 전부다. 혹자는 이것도 입법이유서가 아니냐고 강변할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이나 독일의 수십 내지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입법이유서와 비교할 때 서너 페이지는 휴지 쪼가리일 뿐이다. 그럼에도 해당 법률을 입법 제안한 국회의원이나 그 법률을 관장하는 행정기관은 ‘세계적 선도입법’ 운운하며 홍보에만 바쁘다.

물론 어떤 법률에 ‘정상적’인 입법이유서가 존재한다고 해서 해석상 논쟁이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때 제기되는 논쟁은 해석상의 ‘혼란’과는 그 성격을 달리한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입법자의 의사를 탐구하는 주관적 해석방법’과 다른 한편으로는 ‘법률의 목적에 지향된 객관적 해석방법’을 둘러싼 학술 차원의 논쟁이기 때문이다. 입법이유서의 존재의의에 관해서는 우리말로 번역된 훌륭한 문헌이 존재한다(『입법』 - 클루트/크링스 공저, 박영도 외 4인 공역, 법문사, 2017). 입법 관련 종사자들은 읽어볼 필요가 있다.

 
 
 
/박성호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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