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우연히 어느 변호사 사무실에 들른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본 기이하면서도 독특한 그림 속에는 법복을 입고 뭔가를 모의하는 사람들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현실감 있게 묘사돼 있었다.

신문풍자화를 연상시키는 이 그림들이 왜 변호사 사무실에 걸려 있던 걸까? 단순하게 법복을 입어서? 혹은 그림의 표현이 세밀하고 인상적이어서? 이 작가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미술사를 공부하기 시작한 대학원 시절 이후였다. 파리 국립도서관을 방문했다가 본 ‘입법부의 배(The Legislative Belly; Perspective View of the Ministers' Seats, 1834)’라는 작품 안에는 잇속을 채우기 위한 정치인들의 얼굴이 과거에 본 법복 입은 인물들과 묘하게 오버랩 되고 있었다.

작가는 ‘크레용을 집은 몰리에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던 오노레 도미에(Honoré Daumier, 1808~1879)로,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풍자한 천재화가이다. 대표작 ‘삼등열차(1864)’에는 가난하고 지친 이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내재하지만, 잡지나 신문 속 삽화들에는 부조리와 부패에 찌든 기득권을 향한 날카롭고 시니컬한 시선이 우스꽝스러운 서사 속에 감춰져 있다.

4000여 점 이상의 석판화에 담긴 시대풍자, 그 안에서 많은 범주를 차지하는 법관 그림들은 검사와 변호사가 귓속말을 나누고 있는 모습, 법도 없고 처벌받는 사람도 없는 재판현장, 뒷돈을 받고 판결을 조작하거나 눈물연기의 달인이 된 변호인들이 등장한다. 가난한 백성들이 바친 금화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살찐 대식가로 묘사된 국왕 루이 필리프 1세를 그린 ‘가르강튀아(1931년 만평)’에는 탐욕을 상징하는 군주와 착취당하는 하층민,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한 부르주아 엘리트들이 공존한다. 도미에는 가르강튀아를 그린 죄로 유명세를 얻고 스물셋의 나이에 파리의 악명 높은 생트 펠라지 감옥에서 6개월의 실형을 살았다.

‘바리케이드 왕정’이 내세운 ‘공정이라는 가면’을 쓴 사람들을 향한 경고, 도미에의 그림을 보면 법은 사회질서의 근간이고 법조인의 윤리는 법과 사회를 지탱하는 연결고리라는 사실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도미에는 세상에 감춰진 추악함을 풍자와 위트 속에 사실적으로 담아내고자 노력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이행하던 격변기, 언론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이 만들어지고 탐욕과 기만에 물든 부르주아 엘리트들이 하층민의 고혈을 짜내던 시절의 그림들이 오늘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변호사 사무실에 걸려있던 도미에의 사법풍자화를 보고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그가 ‘샤리바리(Le Charivari)’ 잡지에 묘사한 법률가, 의사, 교수, 사업가, 정치인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지식인들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안현정 예술철학박사

성균관대박물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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