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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통신]빈 자리
강태훈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11기  |  erguis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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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3호] 승인 2020.02.24  09: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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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시험이 파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저녁을 먹고 열람실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긴 시험이었습니다. 추운 날임에도 친지들은 밖에서 응시생들을 맞았습니다. 얼굴을 어루만지는 두 손이 보였습니다. 마음을 볼 수는 없지만 푸근함은 전해졌습니다.

다음날은 이상할 정도로 학교가 조용했습니다. 간혹 3학년 선배들이 짐을 빼러 학교에 왔던 게 다였습니다. 정든 자리를 정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3년 동안 책이며 학용품이 눈덩이처럼 쌓였습니다. 그 엄두를 내기까지 얼마간 서 있던 모습을 생각합니다. 이윽고 열람실엔 정말 빈 자리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후에 시험이 끝난 다음날은 일부러 열람실을 비워둔다는 것을 지나가는 말로 들었습니다. 3년 동안 쉬지 않고 공부해온 선배들을 위한 재학생들의 마음이었습니다. 괜히 눈치 없이 그날 열람실에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에 남은 사람들은 며칠간 쓰레기통 주변을 서성이었습니다. 선배들이 남긴 책을 줍기 위해서였습니다. 수험서 값이 한두 푼이 아니기에, 필요한 책을 주울 수 있다면 그것 자체로 이득이었습니다. 잠깐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에도 눈독 들인 책이 사라질 정도로 열기는 후끈했습니다. 이른바 ‘보물찾기’의 시작이었습니다.

저도 행렬에 동참했습니다. 쭈그려 앉아 빠르게 책 더미를 훑어나갔습니다. 연식이 오래되지 않은 기출문제집, 기본 수험서, 시험용 법전 등이 주 목표였습니다. 책뿐만 아니라 책장, 간식거리, 새 답안지 등 요긴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결국 주위 사람도 챙겨줄 만큼 성과가 있었습니다. 꽤 간만의 성취감이었습니다.

안면이 있는 선배들과 인사도 나눌 수 있었습니다. 하나같이 다 후련한 기색이었습니다. 고생하셨다고 말했다가 되레 더 고생하라는 덕담을 들었습니다. 앞으로 갈 길을 생각하니 순간 기분이 아찔했습니다. 공들여 세운 쉬고 놀 계획을 듣다보니 부럽기도 했습니다.

주워온 책들은 생각보다 깨끗했습니다. 손 때도 타지 않은 것들은 정말 버린 걸 주운건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조금 기뻤다가도 시험이 얼마나 촉박했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했습니다. 모든 책을 보고 시험장에 들어가기는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또 쉽사리 모두의 안녕을 바랄 수 없는 시험이 야속하기도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있었습니다. 벌써 새로운 사람들이 행사장에 가득했습니다. 일 년이 참 바쁘게 지났습니다. 제가 앉았을 자리에는 당연하게도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천주교 학생회 홍보차 참석했던 저는 괜히 감회에 젖었습니다. 곧 열람실의 빈 자리도 채워질 것임을 직감했습니다.

바야흐로 전환기입니다. 졸업, 입학, 진급을 맞이하는 모든 법학전문대학원 구성원들의 안녕을 바라봅니다.

/강태훈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1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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