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과의 싸움은 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대유행했던 감염병의 기록은 기원전 430년 펠로폰네소스 전쟁 때 아테네에서 발견된다. 14세기에는 흑사병으로 유럽인구의 최고 60%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때만 해도 의학이 발달되지 않아 환자를 격리하는 것이 최선의 대응책이었으며, 법은 강제력의 형태로 나타난다.

중세시대 검역법의 기록이 베네치아에서 발견된다. 베네치아 검역법은 선박 입항 전 40일의 대기기간을 두어 화물과 승무원을 검역토록 했다. 그러나 40일의 기간은 상인들에게 경제적 손실로 다가왔고, 승무원에게는 구속이었다. 격리와 폐쇄에 따른 법적 쟁점이 12세기에도 마찬가지로 문제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무오년 역병으로 불렸던 1918년 스페인 독감은 전 세계적으로 1억명의 희생자를 낸다. 제1차 세계대전 중 공중보건은 병이 없는 군대를 유지하는데 집중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스페인 독감의 교훈으로 각국은 감염병 보고 의무를 비롯하여 국가 보건체계와 법령 정비에 관심을 기울인다.

1901년 미국에서 천연두가 창궐했고 보건당국은 백신 강제접종을 실시한다. 이에 신체의 자기결정권을 둘러싸고 위헌 논쟁이 펼쳐졌다. 연방대법원은 사회계약설에 입각하여 국가는 공중보건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경찰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20세기를 거치면서 감염병에 대한 국가의 대응은 건강한 삶을 살 권리가 있는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시각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역사적으로 늘 사고가 난 후 새로운 법과 제도가 만들어졌다. 21세기에 들어서도 큰 차이가 없었다. 사스가 터지고 2004년 국립보건원이 질병관리본부로 확대 개편됐으며, 2009년 전염병예방법이 감염병예방법으로 바뀌고 법령이 정비된다. 메르스가 터진 후 법령에 역학조사관 증원 및 권한강화, 감염된 병원의 공개 등이 규정됐다. 코로나가 엄습한 지금 다시 법 개정이 필요하다. 자가격리의 실효성확보, 지자체의 대응능력 제고, 학원 및 체육시설에 대한 휴업 명령 근거 마련 등이 요구되었다.

이해할 만도 하다. 감염병이 매번 나타나는 것도 아닌데 미리 깐깐하게 법을 바꾸면 불편이 가중될 터이고 돈도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잊고 지내다가 다시 감염병이 나타나면 법과 제도의 흠결을 아쉬워하는 패턴이 반복되는 것이다.

21세기를 감염병의 시대라고 한다. 아시아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흑사병이 시칠리아를 거쳐 유럽대륙에 도달할 때까지 10여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어느 한 국가에서 발생한 감염병이 우리의 삶에 도달하는 데는 불과 수일이 걸릴 뿐이다. 감염의 확산은 두려움이며, 두려움 속에서는 선한 윤리를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법이다. 병이 발생하기 전에 법을 먼저 챙겨봐야 하는 이유이며, 우리가 기대하는 시민의식도 잘 정비된 법과 제도 위에서 성장할 수 있음을 새겨야 할 것이다.

 

 

/최승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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