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역사를 좋아한다. 요새는 빅데이터니, 클라우드 컴퓨팅이니, 인지심리학이니 해서 인간의 행동패턴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정리하고 미래 행동을 예측하는 사업이 21세기의 새로운 먹거리처럼 많이들 이야기 한다. 그런데 우리가 과거부터 오랫동안 역사를 공부해온 이유는 과거의 인류의 경험을 들여다보고 현재의 삶, 미래의 삶에 대한 교훈을 얻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역사가 우리 인류의 빅데이터인 셈이다. 인류의 고전 학문 중 하나인 역사학이 사실은 가장 진일보한 데이터의 보고인 것이다. 우리들은 종종 기술 발전에 따른 현란한 용어에 현혹되긴 하지만 사실은 내용물은 같고 껍데기만 바뀔 뿐이다. 그래서 필자는 역사를 좋아한다.

중국 고대 춘추전국시대, 거대한 중국대륙에서 수십 개의 나라가 수백 년간 흥망성쇠를 거듭하다가 결국 진시황의 진(秦)나라가 전국을 통일하였다(BC. 221년). 하지만 통일을 위한 진나라의 정복전쟁은 수많은 희생을 강요했다. 그 중에서도 장평대전(BC. 260년)은 규모나 참혹함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무려 조나라 장병 40만 명이 생매장을 당했으니 말이다. 진나라와 조나라가 싸운 장평대전에서 조나라군을 이끈 장수 조괄은 이론에만 밝았지 실전 경험이 없었다. 부친 조사가 수십 년 전 알여의 싸움에서 진나라군을 격파한 적이 있었으나, 조사는 아들 조괄이 전쟁은 목숨이 달린 일인데 너무 쉽게 이야기 한다고 자주 질책을 하였다. 그의 어머니조차 아들이 장평대전의 지휘관으로 임명되는 것을 제발 하지 말아달라고 왕에게 탄원을 하였을 정도였다. 하지만 야심이 가득한 달변가였던 조괄은 왕명을 등에 없고 수십만 장병을 이끌고 장평에 나선다. 그러나 진나라 장수 백전노장 백기의 유인책에 걸려 조나라군은 속된 말로 박살이 나고, 조괄도 그 싸움에서 전사한다. 장평대전 이후로 조나라는 과거와 같은 국력을 회복하지 못했고, 40년 만인 기원전 228년 진나라에 의해 멸망당한다.

조괄은 그로부터 400년 후의 삼국지(위, 촉, 오)의 촉나라 마속과 자주 비교된다. 마속도 유능한 인재이긴 했지만 한 조직의 생사를 감당할 만한 위인은 되지 못했다. 유비가 죽기 직전 제갈량에게 마속은 말만 요란하고 실속이 없어 크게 쓸 사람이 아니니 주의하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제갈량은 유비의 당부를 저버리고 마속에게 1차 북벌(AD. 228년) 당시 중요한 길목이었던 가정을 지키게 한다. 하지만 실전 경험이 없는 탓에 초보적인 실수를 저질러 위나라 명장 장합에게 패해 가정에서 쫓겨난다. 그로 인해 1차 북벌은 실패로 돌아가고 제갈량은 군령을 세우기 위해 울면서 마속을 벤다. 그 유명한 읍참마속(泣斬馬謖)의 기원이다.

조괄이나 마속 모두 병법을 눈으로만 익혔고 말만 잘할 뿐 병서의 이론들이 어떻게 실전에 적용되는지, 이론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서의 임기응변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은 상태에서 끊임없이 정보를 구하고 상황에 맞는 결정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엘리트라는 자만심만 높아서 다른 사람의 충고는 한귀로 흘렸다. 조괄과 마속이 패배의 책임을 지고 자신의 목숨을 내놓기는 했지만 과연 그 목숨의 대가로 조나라 장병 40만 명의 목숨과 촉나라 1차 북벌의 실패를 등치시킬 수 있을까. 지도자의 독선과 무능, 자만심은 아무리 선의로 그랬다 한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죄일 뿐이다. 역사는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과거의 사건을 전해주면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계속해서 큰 교훈을 주고 있다. 하지만 듣는 귀가 없다면 빅데이터니, 인지심리학이니 그럴싸한 말로 갖은 포장을 해본들 아무런 쓸모가 없을 뿐이다.

/문일환 변호사

경남회·법률사무소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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