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 노총각이 청첩장을 가지고 왔다. 하와이대 로스쿨에서 만난 판사와 부부가 된다고 했다. 법원에서 ‘하와이’ 대학으로 연수를 보낼 것 같지도 않고, 로스쿨 학생과 ‘현직’ 법관 사이에 로맨스가 움틀 것 같지도 않았다. 어렴풋이, 그가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재학 중 하와이대 로스쿨 LL.M 과정을 이수했던 기억은 났다. 인하대에 등록금을 내면 하와이대 로스쿨의 ‘훨씬 비싼’ 등록금을 면제받을 수 있는 제도였다.

그의 설명은 이랬다. 법원에서 처음으로 하와이로 연수 보낸 여인이었는데, 자신은 과정이 끝나고 돌아올 무렵 그 여인은 하와이 땅을 밟았노라고. 그 여인의 정착 과정을 도와주다 보니 아스라이 연정이 싹트기는 하였으나 ‘하와이’라는 공간 탓이려니 하였다고, 서울로 돌아와서도 ‘노트북이 이상하다’는 식으로 연락이 왔고 온라인으로 작동을 도와주다가 스멀스멀 확신이 들더라고, 그래서 결국 변호사 등록을 한 후 청혼을 하였노라고. 그는 법학전문대학원 제도의 수혜자이고 그의 혼인은 빛나는 미담(美談)이다. 외무고시를 준비하고, 타임지(Time紙) 영어강사를 했던 그는 동기들에게 참 좋은 형이자 오빠였다.

그가 재학 중이던 그 무렵에는 법학전문대학원에 생기가 넘쳤다. 불쑥불쑥 들어와 커피 달라고 조르고, 복도에서 괜히 어깨동무하며 친한 척하고, 통학 버스를 놓친 후(다음 버스가 오기에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며) 시간을 때워달라고 떼쓰던 그들이, 너무 힘들다고 방문을 들어서면서 바로 울음을 터뜨리던, 통금으로 기숙사 문이 닫혀서 아침까지 달려야 한다고 생맥주잔을 들고 호기를 부리던 그들이 ‘대체로’ 법조인이 되었다. 그런데 미담은 여기까지다. 제도 초기여서 가능했던 신화다. 시장에는 준비된 자원이 고갈되었고, 교육기간은 턱없이 부족하며 시험과목은 속절없이 산만하다.

돌이켜 보면 법학전문대학원 도입 과정은 몰상식과 파렴치의 연속이었다. 일본은 2015년, 법조인 배출 인원을 1500명으로 정리하였다. 인구가 2배이고 경제력이 5배인 국가의 현실이다. ‘황당하게’ 법학전문대학원법이 통과된 후 법무부의 초기 대응은 ‘5개 법학전문대학원 인가, 입학정원 1200명에 1000명 합격’이었다. 그나마 작동 가능한 수준이었다. 정치가 춤을 추면서 학생 수도, 학교 수도 엉망이 되었다. ‘유사직역 통합’은 애당초 망각의 강을 건넜다.

법학전문대학원 제도를 유지하여야 한다면, 입구를 줄이고 출구를 열어서 지속가능한 제도로 바꾸어야 한다. 입학생 수를 줄이고, 합격률을 높이고, 교육기간을 늘리자. 무려 4일간 -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 같은 과목을 선택형·사례형·기록형으로 반복 테스트하는 망가진 시험방식도 물론 수술하여야 한다.

 

 

/홍승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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