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짓다. 집을 짓다. 옷을 짓다. 국어에서 동사로 ‘짓다’라는 말의 쓰임새를 찾아보면 의식주에 관한 표현에 주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사회를 지탱해 나가고 구성원들의 행동기준과 한계를 정하는 법의 역할을 생각해본다면 법에도 ‘짓다’라는 동사를 사용하는 것이 어울릴 듯하다.

지난 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법을 지었을까? 법을 짓는 것이 입법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법의 의미를 해석하여 적용하는 일 그리고 법이 살아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집행도 포함한다. 올해 국회는 1700여 개 법률안을 처리했으며, 헌법재판소에서도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 제3조 등 위헌소원 등의 결정을 했고, 법원 역시 수많은 사건에서 법적 판단을 내리고 판례를 형성했다.

해를 넘어 지어가는 법은 한 사회에 축적되어 문화를 만들고 삶을 변화시킨다. 특히 안정성을 중시하는 법은 움직임이 매우 신중하고 느려 잘못 지어진 법률과 해석을 고치는 것도 오랜 시간이 지나야 된다는 점에서 숙고가 필요하다. 일선에 서 있는 법조인들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법을 잘 짓는 것의 핵심은 그 사회의 수요와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다. 한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그간 형성되어 온 관행과 문화 그리고 역사에 기인한다. 다른 나라들과 같은 사회적 문제를 가지고 있더라도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이다. 예컨대, 가짜뉴스(허위조작정보) 대응에서 독일과 프랑스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관련 법령을 통과시켜 시행하고 있지만, 말레이시아에선 악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로 제정 4개월여 만에 폐지됐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경제적 이해 또는 사회적 가치와 맞물린 첨예한 이익의 충돌로 진통을 겪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혁신적인 기술과 소비자의 보호다. 사업자는 규제의 불편함만을 강조하지만 소비자는 그로 인한 위험을 두려워한다. 개인정보 활용이 필요함은 인정하지만 IT분야를 포함한 기업들의 빈번한 개인정보유출 및 남용, 무책임한 대응은 활용 범위 확대를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게 만들었다. 따라서 무조건적인 규제 완화가 아닌 민사적 책임 범위 확대가 잘 조화된 법을 지어야 한다.

좋은 법은 구성원의 자발적 의지에 따라 생활의 관행으로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긍정적 사회발전의 기반이 된다. 따라서 매 순간 법을 잘 짓는 일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며, 소홀히 되어서도 안 된다.

법을 만들고 해석하고 집행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이를 준수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참여하는 시민의 역할이 중요함은 부인할 수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바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법조인들이다. 변화와 발전은 어느 한 순간 기적이 아닌, 축적의 시간을 통해서 온다. 법의 발전과 변화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새해에도 좋은 법을 지어야 한다.

 

 

/최승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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