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일 것 같은, 2020년이 됐다. 연말연시가 되면 새삼스레 서점에 간다. 지난 한 해 살아온 길을 돌아보고, 다가오는 새해에는 나 자신에게로 이르는 보다 나은 길을 찾아보겠다는 일종의 다짐이다. 상투적 레토릭과 같은 연례행사다. 내 손에 잡힌 책들을 보면서, 2000년, 2010년, 2020년 내 인생의 좌표는 어디쯤 와 있는지 살피게 된다.

지난해 가장 큰 화두였던 책은 ‘82년생 김지영’이었다. 나 역시 동시대를 살아가는, 82년생 여성으로서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친구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영화는 너무 비현실적이다. 남편이 공유다. 게다가 엄청 착하다. 공감이 안 된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며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 훨씬 암울하다는 대화를 했다. 심지어 지난 11월 초, 국제행사인 로아시아(Lawasia) 연차총회 참석을 위해 대한변호사협회 대표단의 일원으로 홍콩을 방문했는데, 도시 곳곳에서 82년생 김지영의 포스터를 볼 수 있었다. 홍콩을 포함한 국내외 여성 변호사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워킹맘으로서의 고충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들은 일을 하기 위해, 부득이 가족들의 도움을 받거나 여성 일방이 휴직, 퇴사를 하거나, 아이를 양육하기에 용이한 직장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는 여성의 경제력, 능력, 사회적 지위의 고하를 막론한다.

수년 전부터 멘토로 모시고 있는 대만 변호사님이 있다. 그 누구보다 당당하고 열정적으로 국제적으로 활동하고 계시는 변호사님이다. 그런데 그런 분도 20년이 넘는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지만, 워킹맘이자 여성 변호사로서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여전히 친정 부모님의 도움을 받고 양육을 하고 있으며, 해외출장을 하고 야근을 하고 들어와도 아이의 숙제를 체크하고 밤늦게까지 집안살림을 챙긴다는 이야기였다.

워킹맘인 여성 변호사의 경우, 일과 가사, 양육 부담을 떠안음과 동시에, 사업주 혹은 동료들로부터 여성이면 임신, 출산, 육아로 인해 부득이하게 발생할 수 있는 업무적 공백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에 대한 부담을 동시에 감당하여야 한다. 나 역시도 많은 다른 여성 변호사들과 마찬가지로, 여성이 아닌 변호사로서 능력을 인정받고 자리매김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정말 감사하게도 가족들의 큰 도움을 받으며 일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시간이 빠듯하다. 때문에 다양한 역할을 저글링하듯 수행해야 한다.

임신, 출산, 양육의 문제는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문제이다. 아이는 너무 감사하고, 이 세상 더없이 소중한 존재이고 축복이나, 이를 여성이 전적으로 감당하여야 할 문제 혹은 가족 내부에서 해결하여야 할 문제가 되는 일이 되어서는 안된다. 아이는 온 사회가 함께 키우는 존재다. 2020년, 남녀노소 모두가 서로를 함께 돌보며 사는 사회가 되기를 기원해본다. 내년 이맘때쯤 내 손에는 어떤 책이 들려있을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새삼 기대되고 궁금해진다.

 

 

/최신영 변호사, 서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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