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명의 완벽한 알리바이. 모두가 용의자다.” 2017년 11월 개봉했던 리메이크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카피 문구다. 당시 영화를 보기 전 한 지인은 “카피가 스포일러야”라고 넌지시 말했다. 영화관에서 보려던 계획은 결국 접어둬야 했다.

이 영화 속 모든 용의자는 카피 문구처럼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졌다. 물론 ‘밀실살인’의 법칙 상 범인은 반드시 이들 가운데 있다. 이때 보통은 이렇게 생각한다. “범인 한 명이 끝까지 거짓말을 하는구만.” 그러나 이 같은 생각을 뒤집는 게 바로 이 영화의 반전이다. 카피는 솜씨 좋은 스포일러였던 셈이다.

스포일러는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생략한다. 인간은 기승전결의 점층 구조를 거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동물이다. 단계 없는 절정에는 감동도 없다. 영화, 드라마, 소설 등의 근본이 되는 ‘이야기’의 본질은 결과에 이르는 과정이다. 과정의 완성도가 이야기의 질을 좌우한다.

기자 역시 솜씨 있는 이야기꾼이 되길 꿈꾼다. 기승전결에서 결을 앞세운다는 점만 다르다. 스트레이트 기사의 기본 구성인 ‘역피라미드’는 결과부터 말한다. ‘옛날 옛적에’가 아니라 ‘공주가 왕자의 키스를 받고 깨어났습니다’라는 문장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역시 중요한 것은 결론에 이르도록 과정을 쌓아가는 능력이다.

검찰 기자들은 최근 수사공보준칙 개정 이후 취재가 안 된다며 아우성이다. 청와대와 여당이 ‘피의사실공표’를 주문처럼 외워온 탓이다. 각 검찰청의 ‘전문(專門) 공보관’은 스스로 답하는 바가 없어 ‘전문(傳聞·hearsay) 공보관’이라는 웃지 못할 농담까지 나온다. 달콤했던 스포일러의 추억은 첫사랑과 주고받은 편지처럼 아련하다.

검찰 기자단을 향한 따가운 시선은 “과정 없이 결과에만 치중했다”는 비판으로 요약된다. 이야기꾼이 아니라 스포일러가 됐다는 쓴소리다. 사람들은 과정이 생략된 결과에 감동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쌓아가는 노고가 부실했다는 것을 안 순간 배신감을 품게 된 것이다.

억울하다는 항변은 유효하지 않아 보인다. 완벽해 보이는 알리바이를 가진, 죄다 범인 같은 용의자들의 진술과 흔적을 좇으면서 과정의 미학에 입각한 기사를 쓰는 수밖에 없다. 사실 취재는 원래 그러한 것이었다. 중요도가 가늠되지 않는 관계인들을 닥치는 대로 만나고 미친 사람처럼 등기부를 수십, 수백 개씩 떼는 일이 기자의 일상이다.

지름길은 없다. 이제는 검찰 수사 발표처럼 뾰족한 결론이 없더라도 과정을 꾹꾹 눌러 담은 이야기를 기사로 쓸 수 있는 모험이 필요하다. 악어새로 오해받는 게 싫다면 과감히 늪을 떠나는 게 답이다.

 

/구자창 국민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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