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날씨의 아이’라는 영화를 봤다.

주인공 ‘히나’라는 이름의 소녀는 어느 날, 아픈 엄마가 단 하루만이라도 맑은 날씨를 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다가 날씨를 맑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

영화 속 여름 날의 도쿄, 연일 비가 내려 그치지 않고 이상 저온 현상까지 생기게 되자, ‘히나’는 우연히 얻게 된 능력으로 맑은 날씨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돈을 받고 날씨를 조절하게 된다.

‘히나’의 능력으로 사람들은 행복해하고, ‘히나’ 역시 사람들을 기쁘게 해줄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해하지만, 그 능력을 쓰면 쓸수록 ‘히나’의 몸은 점점 투명해지고 결국 소멸될 위기에 처한다.

자신의 능력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면 할수록 정작 자신의 몸은 점점 소멸되어 가버리는 ‘히나’. 그 모습은 마치 사건이 하나씩 해결할 때마다 ‘번아웃’ 되어 버리는 나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해결 방법을 모색하다 보니, 잠자는 순간에도 꿈이 되어 나타나는 사건들. 의식은 물론 무의식을 지배하며 변호사의 일상을 점령하는 우리 의뢰인들의 수많은 사건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과 능력을 총동원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일이 반복되니, 어느 순간 나의 성장은 멈춰 있고 스스로 점점 소모되어 없어져 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 자주 들었다.

그동안 10년 넘게 쉼없이 일을 했으니 올 한해는 좀 쉬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다고 개업변호사에게 생명줄인 사건 수임을 아예 그만둘 수 없었다. 두 평도 채 안되는 작은 공간을 사무실로 얻어 컴퓨터만 넣어두고 직원도 없이 혼자 해보기로 했다. 규모를 작게 하면 사건 수를 늘리지 않을 테니 자연히 쉴 수 있는 여유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서 틈나는 대로 서울을 벗어났다. 제주도를 시작으로 마라탕을 먹으러 상하이에 가고, 클래식 음악 연주를 듣기 위해 베를린에 갔다. 엉덩이 들썩이게 하는 햇빛 좋은 날엔 런던과 파리에서 낭만을 즐겼고, 한 여름엔 서울의 숨막히는 더위를 피해 스위스 산골짜기를 찾아가 온천욕을 하고 오스트리아의 작은 호수 도시에서 오페라를 즐겼다.

이렇게 놀러 다니는 중에도 다행히 생명줄은 끊기지 않아 사건 상담도 하고 재판도 다녔다. ‘이래도 괜찮을까?’ 그래도 괜찮았다. 일에 대한 강박증을 내려놓고 잘 쉬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조금씩 내려놓기를 반복하다 보니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쉬는 건 포기나 단절이 아니라,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한 충전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다시 방전의 시간이 찾아올 수 있겠지만, 제대로 충전하는 법을 배웠으니 그땐 또 충전하면 된다.

혹시 쉬는 걸 망설이는 분이 있다면,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그 순간이 정말 쉬어야 할 때라고. 잘 쉬고 난 후 만나게 되는 나는 분명 한단계 성장해 있을 것이라고. 세상의 모든 우리 변호사들, 화이팅!

 

 

/임주영 변호사

서울회·법률사무소 Young&Partn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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