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직후 거대한 전쟁의 늪에 젊은이들을 몰아넣고도 전후 전통적인 허위와 위선의 세계관을 강요하는 기성세대에 대해 저항한 일군의 젊은 영국 작가들은 ‘앵그리 영맨’이라는 문단 내 일파를 형성하고, 기존의 관습과 제도를 일거에 뒤집고 젊은 세대가 직접 권력을 쟁취하고 이끌어나가는 세상을 형상화하였다.

처음에는 단순한 분노로 시작한 ‘앵그리 영맨’들의 창작 활동은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처칠의 보수당 정권을 노동당 정권으로 변모시키고, 현대 최후의 혁명인 68혁명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앵그리 영맨들이 이끌어낸 68혁명은 서구 정치선진국들이 형식적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것을 넘어 민주주의의 이념과 정신이 사회 문화적으로 확산되고, 탈권위주의적인 열린사회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 86세대들의 위선이 사회적인 화두가 되고 있다. 한국의 ‘앵그리 영맨’ ‘68세대’에 비견되던 86세대들이 이러한 비판을 받기 시작한 것은 그들이 젊은 시절에 가졌던 이상과 다르게, 그 이전 세대와 다를 바 없는 권위주의적이고 관습화된 삶을 살아가며, 최소한의 윤리성을 갖추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역사의 흐름 속에 세계대전 이전 시민혁명을 이루고, 세계대전 이후 사회혁명과 윤리혁명을 이룬 서구 정치 선진국들과 달리 해방 이후 민주주의를 갓 도입한 우리나라에서 시민혁명 세대인 86세대에게 사회혁명과 윤리혁명까지 기대하기는 애초 너무 큰 기대였는지 모른다.

우리 사회 곳곳에 주류로 뿌리내린 86세대들은 고령화시대를 맞아 끊임없이 높은 진입 장벽을 치고 자신들의 기득권은 강화하며, 공익과 인권 그리고 열정과 노력 등의 이름으로 젊은 세대들을 무한 경쟁의 삶으로 몰아넣고 있다. 급격한 고도성장기가 보장한 시대적 지대수익에 안주한 채, 근로 소득으로는 자신과 가족들이 머물 집 하나 마련하기 어려운 젊은 세대에게 열정페이와 공익봉사, 그리고 블루오션으로의 진출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런 86세대들에게 막상 젊은 세대를 향한 진정한 연대의식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열전은 없지만, 현재 젊은 세대들은 변호사같은 자격증을 취득한다 해도 무한 경쟁의 전장에 내몰릴 것을 강요받고 있다. 86세대에게 법무사와 같은 유사법조직역은 시혜와 온정의 대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차가운 현실에 내몰린 젊은 세대 변호사들에게 법무사 등 유사법조직역은 당장의 삶을 위협하는 강력한 경쟁자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모든 비극은 언제나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50년대 ‘앵그리 영맨’ 세대가 서구 사회의 진정한 사회변혁을 이끈 68혁명 세대로 진화하듯 지금 분노하는 젊은 세대의 목소리가 젊은 세대의 직접적인 사회혁신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이러한 비극은 끝이 날 것이다. 아무도 젊은이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는다. 스스로 닦고 일어설 때 비로소 세상은 변화한다.

 

 

/박상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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