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받을 수 없어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2일 오전 미뤄 뒀던 점심 약속을 확정하기 위해 친분이 있던 검사에게 전화를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바쁜 일이 있나 싶어 이번엔 또 다른 검찰 수사관에게 전화를 해봤다. 역시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월요일 오전이라 밀린 업무를 처리하나보다 싶어 다시 걸지 않았다. 회신은 끝내 없었다.

취재차 전화를 건 검사들도 연락을 피하기 일쑤였다. “휴가 다녀온 사이 단체로 내 전화번호를 차단했나”하는 의심도 들었다. 의문은 잠시 뒤 풀렸다. 대검찰청 기자실 곳곳에서 “왜 아무도 전화를 안 받느냐”라는 탄식이 들려왔다. 법무부가 제정한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금지규정)’이 시행된 첫 평일의 기자실 풍경이다.

금지규정에 따르면 앞으론 기자가 전문공보관을 제외한 검사나 수사관 등을 상대로 사건 관련 취재를 할 수 없다. 반대로 검사나 수사관이 기자와 개별 접촉하는 것도 금지된다. 기자는 이를 어기더라도 처벌이나 징계를 받지 않는다. 반면 공무원인 검사나 수사관에겐 징계 사유가 될 수도 있다. 전화를 피하는 일선 검찰 직원을 무작정 미워할 수 없는 이유다.

앞서 법무부는 ▲수사 보안을 위해 검사의 언론 접촉을 금지하고 ▲오보 또는 추측성 보도를 한 기자의 검찰청 출입을 제한할 수 있다는 내용의 금지규정을 지난달 1일부터 시행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언론계를 비롯한 사회 각계에서 ‘국민 알 권리를 침해하는 독소조항’이란 비판이 잇따랐다.

법무부는 언론계와 대한변호사협회 등 유관기관의 의견 수렴을 대폭 거쳤다고 했지만 이는 거짓임이 드러났다. 결국 법무부는 여론에 못 이겨 법조 출입기자단과 금지규정 수정을 논의했다.

하지만 ‘오보 기자’의 검찰청 출입 제한 조항만 삭제되고 기자단이 요구한 검사·수사관의 언론 접촉 금지 조항 등의 나머지 독소조항은 그대로 유지됐다. 협의의 모양새는 갖췄으나 합의는 되지 않았다.

금지규정은 시행 직후부터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무마 의혹 사건 등 청와대를 향한 검찰 수사가 순식간에 ‘밀실 수사’로 전환됐다. 헌법이 보장한 언론의 자유를 법무부 훈령이 급박하게 가로막았다. 법무부가 원했던 것이 이런 것이었나. 몸에 좋은 약은 쓰다. 지금 법무부는 쓴 소리가 듣기 싫어 언론의 펜을 부러뜨리려고 한다.

5공 때보다 열악해진 취재 환경이지만 기자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가리면 가릴수록 한줄기 빛은 더 선명하게 새어 나오는 법이다. 시대를 역행하는 법무부의 금지규정을 나는 거부한다.

 

 

 

/김기정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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