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열심은 두 아이의 ‘엄마’이자 3년차 ‘변호사’다. 낮에는 재판과 상담 등으로 바쁘고, 서면을 쓰기 위한 야근은 당연한 일이 된지 오래다. 변호사가 되면 우아하게 법정에서 변론을 하고, 고상하고 품위 있는 생활이 보장될 것이라 상상했다. 하지만 현실은 엄청난 업무량으로 아이들과 집 근처 공원으로 나들이 한 번 나가기도 어렵다. 소송과정에서의 스트레스는 제대로 풀 시간도 없이 쌓여만 간다. 이러한 상황에서 ‘워라밸’은 그저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워라밸은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Work and Life Balance)’의 줄임말로 ‘저녁이 있는 삶’으로도 표현된다. 직장을 선택하는 조건으로 근로시간과 개인의 삶 사이의 균형을 고려하는 근로자들이 늘어나면서 등장한 신조어이다. 영미권에서는 1970년대부터 등장한 개념이지만 한국에서는 지난해부터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워라밸을 고려하여 직장을 선택하는 근로자들이 증가하면서 기업들도 보다 우수한 인력의 확보를 위해 출산·육아휴가를 확대하고 초과근무 시 일반근무시간을 줄여주거나 자율출퇴근제를 시행하는 등 근로자의 ‘저녁 있는 삶’을 지원하면서도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지원책들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변호사에게 ‘워라밸’은 다른 세상의 이야기다. 사건기록 검토, 사실관계 정리, 필요한 증거 수집 및 정리, 관련 이해 당사자들과의 면담, 서면의 작성, 재판 출석 등 변호사의 하루는 말 그대로 빛의 속도로 지나가 버리기 일쑤다.

하지만 변호사의 삶에 ‘인공지능(AI)’이 도입된다면 어떨까? AI는 더 이상 SF영화 속 상상의 기술이 아니다. 가장 쉬운 예로 우리는 매일 거리경고, 자동 순향 제어, 추돌 방지, 주차 보조, 사각지역 모니터링, 차선이탈경고 등 상당한 AI 기술이 탑재된 자동차를 이용하고 있다. 2014년 바둑으로 인간을 이긴 ‘알파고’나 지난 8월 사람변호사팀을 상대로한 근로계약서 자문대결에서 이긴 ‘알파로’ 등 이미 단순보조를 넘어 말 그대로 ‘지능’을 갖춘 AI도 등장했다.

하루하루 눈이 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AI의 도움을 받는다면 변호사도 ‘워라밸’ 또는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하지 않을까? AI 비서에게 사건분석이나 기록 검토와 같이 많은 시간이 필요한 단순 반복업무를 맡기고, 소송전략 수립이나 서면작성과 같이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에 변호사의 능력을 집중하게 한다면 분명 변호사 업무의 생산성도 올라갈 것이다.

AI가 도입된 변호사의 하루를 상상해 보자. 2023년, 나열심 변호사는 아침 9시에 출근하여 AI 비서가 지난밤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사건기록과 증거들을 검토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단순 검토시간이 줄자 소송전략 수립과 자문의견서 작성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오후 2시 의뢰인 상담 중 추가된 요구사항들을 반영한 서면을 오후 4시까지 법원에 제출하고, AI 비서에게 새로 수임한 사건의 자료와 분석방법의 지시를 마치면 오늘도 6시에 퇴근할 수 있다. 나열심 변호사의 삶에도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며 그 날 있었던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저녁’이 가능해진 것이다.

 

 

/임경숙 변호사

서울회·법무법인(유) 산우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