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매주 우리는 법정에서 만났다. 각자가 대리하는 기업이 영위하는 사업 특성상 서로 다투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더러 두 사건의 기일이 같은 날 지정되기라도 하는 경우에는 대표변호사님보다 상대방 변호사님을 뵙는 시간이 더 길기도 하였다.
선임 변호사님이 사건기록을 인계하면서 재판부에 따른 변론의 특성, 기업 담당자와 소통 방법 등의 노하우도 함께 주시기는 하였지만, 상대방 변호사님에 대하여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상대방 변호사님과는 업무상 필요한 소통만 하는 것이 관례이므로 나도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런데 첫 재판 변론을 마치고 나오니 상대방 변호사님께서 “담당 변호사가 바뀌었네요? 반갑습니다”라며 인사를 하셨다. 한 눈에 보기에도 대선배이신 변호사님께서 간단한 목례가 아닌 인사를 해주시니 순간 당황하여 더듬거렸던 것 같다.
대표변호사님께서 서면교정 중에 던지신 비수를 가슴에 가득 꽂고 재판에 나간 어느 날이었다. 도제식 교육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음을 잘 알고 있는 터라 비수를 맞아도 할 말은 없었다. 그러나 재판 직전에 맞는 비수는 그 타격이 유난히 더 크다. 게다가 하필이면 재판부의 구술변론 요청이 예상되는 기일이었다. 판례나 논문 등을 뒤져도 꼭 맞는 법리를 찾을 수 없어 계약서와 법조문만 가지고 끙끙대며 구성한 서면이라 변론에 대한 걱정과 부담까지 안고 법정에 들어갔다.
어떻게 구두변론을 마쳤는지도 모르게 재판을 마치고 나오니 상대방 변호사님께서 “이 변호사, 서면 잘 읽었습니다. 찬찬히 살피며 나도 덕분에 공부했습니다. 우리가 항소해야 할 판결이 나오겠어요”라고 하셨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정중히 인사를 하셨다. 말씀을 듣고 멍했던 나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비수가 꽂혀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 울컥함과 동시에 확 차올랐다. 상대방으로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열린 마음으로 격려해 주셨음을 비로소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영주 변호사
서울회·법률사무소 다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