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다가온다. 여당은 일찌감치 현역의원 공천심사 시 법안 발의 건수를 평가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발표에 따르면 발의 건수가 많을수록 의정활동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다. 과연 많은 양의 법안을 발의했다 하여 의정활동을 잘 수행했다고 할 수 있는걸까?

지난 11일 기준, 20대 국회 의원발의 법안이 2만 808건에 이른다. 이들 중 3년 반 동안 가결, 대안반영, 폐기, 철회 등 사유로 5000여 건이 처리되었고 1만 5681건이 여전히 계류 상태다. 한편, 20대 국회 법제실의 법률안 성안 실적은 4만 건을 넘는다고 한다. 통계에 누락된 비공식 처리 법안까지 합하면 법제실에서 의원실로 송부한 법안의 수는 훨씬 많을 것이다.

4년 동안 2만 건의 법안을 발의한다고 해보자. 단순셈법으로 365일 내내 평균 13건의 법안을 꾸준히 발의해야 나올 수 있는 수치다. 시각에 따라서는 의원정수가 300인이고, 의원 1인당 임기 내 평균 66건의 법안을 발의하게 되는 셈이니 많은 숫자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국회법상 의원발의에 10인 이상 의원의 찬성이 필요하고, 의원실 별로 발의 건수 편차는 꽤 크다. 그러면 통계상 열정 넘치는 몇몇 의원실에서 날마다 법안을 만들거나 동료의원 법안에 품앗이하듯 서명을 하고, 또한 쏟아지는 법안들을 검토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국회라는 공장은 이렇게 쉼 없이 굴러가고 있는데 도대체 내가 마주치는 택시기사님들마다 “국회는 왜 일을 안 합니까?”라고 물으시는지. 정말 억울할 지경이다.

일을 하면서 유독 자괴감이 드는 때가 있다. 딱 봐도 발의실적 쌓으려고 의미 없이 특정 자구나 숫자만 개정하거나(이른바 ‘알법’), 이전 국회에서 임기만료 폐기된 것을 발굴해 검토 없이 그대로 올리는 법안(이른바 ‘재탕’)을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있을 때다. 법안 의뢰서 본문에 기사 링크 하나 달랑 걸려있을 때도 있다. 이제 나도 척하면 척이다. 법제관이 기사를 찾아 읽고서 기자가 지적한 문제를 해결하는 법안을 만들어 내놓으라는 의미다. 과연 기자는 현행법을 얼마나 세심하게 검토하고 기사를 썼을까.

이에 반해 치밀하게 준비된, 고민의 흔적이 많이 느껴지는 법안 의뢰도 있다. 솔직히 말해 기계적으로 찍어내는 법안의 양에 치여 양질의 법안을 검토하는 데 쏟아야 할 시간을 빼앗기는 경우도 많다. 여당 공천심사 기준에 대한 지적으로 시작했지만 발의실적 쌓기 관행에 여야 구분 없다.

줄세우기에 급급해서 우리 사회에 어떤 정치인, 입법가(立法家)가 필요한지에 관한 고민이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입법권을 존중한다. 하지만 의원발의 건수는 폭증하고 있고, 그 법안을 검토할 수 있는 물리적인 한계는 분명 존재한다. 입법의 홍수라는 말이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는 이때, 법안에 대한 질적 평가 도입이 시급하다.

 

 

/이세경 변호사·법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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