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모든 것은 한 통의 메일로부터 시작되었다. 
어느 봄날, 대한변협에서 오는 수많은 메일 중에서 “2019 세계변호사협회(IBA) 서울총회 청년변호사 등록비 지원”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대한변협에서 보낸 IBA 서울총회 관련 메일이 처음은 아니었는데, 저 날은 희한하게 타이밍이 맞았던 것 같다. 
사실 ‘세계변호사협회(IBA)'에 대해서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저 메일을 본 순간 갑자기 관심이 생겼다.

이전에도 국제적인 학술대회 등에 참가한 경험이 없지는 않지만, 이렇게나 큰 규모로 전세계의 많은 변호사들이 모이는 국제회의는 처음이라서, 참가를 결정하기까지 조금 고민하는 시간이 있었다.

꽤나 비싼 등록비, 거의 1주일이라는 시간을 비워 놓아야 한다는 부담감, 그리고 그동안 많이 공부하지 못한 영어까지. 고민의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길지 않은 고민 끝에, 결국 2019 IBA 서울총회에 참가하기로 결정을 하였다.

매년 열리는 연차총회가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해야말로 기회가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평소 국제 업무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차에, 다른 나라의 법률가들을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눠볼 수 있는 이런 기회는 분명 흔하지 않을 것이니까. 작년에는 로마에서, 내년에는 마이애미에서 열리는 IBA 연차총회가 가까운 시일 내에 인근국가에서 열릴 기회는 또 얼마나 될까.

게다가, 청년 변호사는 등록비 할인에 대한변협에서 일부 지원까지 해준단다.
가지 않으면 왠지 손해보는 것만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결국, 그렇게 2019 IBA 서울총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2. 사전 준비

IBA 총회가 시작하기 전 주부터 뭔가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약간 워밍업 같은 느낌으로 2019년 9월 19일에 개최된 대한변협-IBA 공동세미나 “법조계 직장 내 괴롭힘 및 성희롱(Bullying and Sexual Harassment in the Legal Profession)”에 참석하였다.

메일 안내에는 진행 언어가 한국어라고 기재되어 있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갔는데, 발표는 영어로 이루어졌다. 
사실 IBA 총회가 열리기 전까지 영어 공부를 많이 해두자고 다짐했지만, 결국 공부를 거의 하지 못한 채로 9월 마지막 주를 맞이하게 되었는데, 공동세미나를 참석한 덕에 조금씩 영어에 친숙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전투를 앞두고 총알을 충분히 장전해 두는 느낌으로, 영문 명함도 새로 하나 만들었다. 원래 사용하던 명함은 외국인을 많이 만날 일이 없어 앞, 뒷면이 모두 한글로 되어 있어 영문이 들어간 명함이 필요했고, 아무래도 일주일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 같아 명함이 모자라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겸사겸사 새로 명함을 만들었다.

IBA 총회가 열리는 주에는 최대한 총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오전에는 업무를 하더라도 오후나 저녁에는 IBA 총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오래 전부터 일정도 다 조정해 두었다.

3. 신기한 인연들

2019년 9월 22일, 세계한인법률가회(IAKL) 청변 멘토링 프로그램 참석차 아침 일찍부터 강원도에 다녀왔다가 IBA 총회 개회식 참석을 위해 코엑스로 향했다.

그곳에서 의외의 인연을 마주했다. 법전원 재학중 일본 로스쿨에서 진행된 써머스쿨에 참가하면서 알게 된 친구를, 그 이후 9년 만에 서로 변호사가 되어 IBA 총회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정말이지 사람 인연 너무나도 신기하다.

개회식을 마치고 welcome party 장소로 가니 정말 너무나도 예쁘게 잘 꾸며져 있어 볼거리가 많았다.

welcome party 에서는 자연스럽게 세계 여러 나라의 변호사들과 인사를 하고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생각보다 다양한 나라에서 많이들 참석하셔서 조금 놀랐었다.

친화력이 좋으신 분들은 그 자리에서 바로 다른 모임에 초대를 해주시기도 했는데, 체력과 시간의 한계로 많이 가지 못 한 게 아쉬웠다.

외국에서의 총회 참석이 아니었기에 IBA 총회가 계속되는 중에도 업무를 쉴 수는 없었다. 그나마 일정 조정을 해서 오전중에 업무를 처리한 후 오후에 IBA 총회에 참석할 수 있었는데, 더 많은 세션에 참석하지 못해 아쉬웠다.

참석한 세션 중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and Intersex (LGBTI) Law Committee 와 Family Law Committee 가 공동으로 주관한 “From east to west: developments and issues in the advancement and protection of the rights of transgender and non-binary people” 세션이었다. 민변에서 활동하면서 성소수자 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인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에서 활동하기도 한 나에게 LGBTI 위원회에서 개최하는 세션은 놓치기 어려운 기회였는데, 발제자로 민변에서 같이 활동하는 변호사님을 또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나도 언젠가는 세션 발제자로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아니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예기치 못한 만남은 계속되었다.
대한변협에서 가장 힘을 준 리셉션 행사  - Korean Night -에서 싱가포르 변호사님들과 얘기하던 중 그들의 동료인 한국 변호사가 있다고 하여 보니, 세상에, 로스쿨 동기였다. 사실, SNS를 통해서 소식은 간간이 접하고 있었지만, 수천 명의 변호사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해외에서 일하는 동기를 만나니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알던 사람과의 우연한 만남이 아닌, 새로운 인연도 있었다.
하루에 2~3개씩의 리셉션 파티에 매일같이 참석하면서 정말 다양한 나라의 법률가들을 만났고, 세계 법조 동향, 각 나라의 사정이나 주로 하는 업무에서부터 서울 방문이 처음이신 분들께는 여행지 추천까지, 갖가지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는데, 이런 대규모 국제 컨퍼런스에서 이렇게 본격적으로 네트워킹을 하는 건 처음이지만, 너무나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각종 세션, lunch 등 식사모임, 리셉션 파티에 참석할 때뿐 아니라, 네트워킹 허브에서 잠시 쉴 때에도, 주위의 다른 분들과 끊임없이 소통을 하였다. 잠시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을 하고 있을 때에도, 꼭 누군가와는 인사를 하거나 짧은 대화를 나누곤 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IBA 총회를 방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 한다고 느꼈다.
단기간에 이렇게나 다양한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해본 경험은 내 인생에서 단연 손꼽히는 경험이 아니었나 싶다.

IBA 총회에서 맺은 인연 중 가장 특별히 기억 중 하나는 아무래도 마지막 날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약 스무 명의 각국 법률가들과 잠실야구장에서 프로야구 경기를 관람한 것이 아닐까 싶다. 치킨과 맥주(치맥), 그리고 치어리더들과 함께하는 응원까지. 우연히 Korean Night에서 만난 모임 주최자로부터 ‘프로야구 티켓 20장을 사려는데 호텔에서는 그만큼의 티켓을 구하지 못한다고 한다’는 얘기를 듣고 티켓 구매만 도와주려던 게,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그들을 이끌고 같이 야구 경기를 관람하고 있었다.

closing party 티켓을 사뒀기 때문에    야구경기 중간에 closing party에도      잠깐 참석했는데, 먼저 귀국하거나      다른 일정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꽤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closing party 에서는 6일간이라는, 짧지만은 않은 시간을 거치며 각종 세션과 소셜 네트워킹 모임에서 만나 이제는 어느 정도 친숙해진 사람들도 다시 만나 작별인사를 나누고, 이번 IBA 총회의 진짜 마무리를 위하여 다시 잠실야구장으로 향했다. 

다행히 늦지 않았고, 결과는 우리가 응원하던 원정팀이 3-0으로 승리! 공룡과 함께 기념사진도 찍고 다들 즐거운 마음으로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4. 맺으며

처음 생각처럼 많은 세션이나 포럼에 참석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이번 기회에 새로 배우거나 알게 된 것들도 많고, 무엇보다도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더 큰 세상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되어 너무나도 좋은 기회였다. IBA 총회가 가까운 곳에서 개최되는 좋은 기회에 이렇게 인연을 맺은 것도 약간은 운명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든다.
마이애미는 어려울지 몰라도, IBA 총회 참석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매우 강하게 든다.

이번 기회에 인연을 맺은 각국의 법률가들과도 교류를 지속하면서, 좀 더 넓은 세계를 향한 발판을 만들어 나갈 생각이다.

끝으로, IBA 서울총회 준비에 애쓰시고 이런 좋은 기회를 잡게 해준 대한변협 관계자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있다면, 또다시 참석하고 싶다.

 

 

/이승경 변호사(인천지방변호사회/법무법인 창과방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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