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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나침반]공익을 다시 돌아보는 이유
최승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spchoi@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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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9호] 승인 2019.11.04  09:4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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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증후군 증상 환자가 늘었다. 그러나 대부분 방치한 채 살다 임계점을 넘어서야 비로소 건강을 챙긴다. 공익이 그렇다. 공익은 민주공화주의체제의 당연한 귀결이며, 핵심요소다. 공익은 정치적 수사를 넘어 국가 개입의 기준이자 정당화 근거가 된다. 그러나 관념의 영역에 방치한 채 문제가 생기기 전까진 좀처럼 들여다보지 않는다.

정작 공익이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도 많지 않다. 다수 학자들이 공익에 대해서 정의를 내렸지만 여전히 다들 ‘각자’다. 일상에서는 불특정 다수의 이익이 공익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현재의 다수가 동의하는 이익이라도 미래세대로 이어지는 지속가능성이 없다면 공익이라 할 수 없다.

국회는 공익의 법적기반을 만든다. 입법에선 수많은 이익이 충돌한다. 공수처와 선거법 등을 둘러싼 여야 대치가 바로 그것이다. 입법을 통해 설정되는 공익은 다원적 이해관계의 타협이다. 그러나 지금 국회는 공익을 이념적 대립으로 치환해 광장까지 끌고 내려왔다. 그간 공익판단은 행정의 전유물이었으나, 권리의식 향상으로 빈번히 검증 대상이 되고 있다. 법원은 판결로 공익을 말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법원은 너무 간단한 설명으로 공익을 다뤘다.

오늘날 공익을 둘러싼 환경은 과거 권위주의시대와 많이 달라졌다. 불의보다 불이익을 더 두려워하는 사회에서 이익에 대한 민감도는 매우 높다. 규제 등에 대해 합리적 설명 없이 공익의 이름으로 정당화한다면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공익은 때때로 남용되기도 한다. 남용은 주로 견제받지 않는 권력과 이기심의 접점에서 형성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온갖 추악한 짓을 다하면서도 공익을 위한다고 정당화하니 말이야”라고 일갈한다. 남용의 모습은 공익의 사익화다.

공익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지켜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독일의 법학자 뒤리히는 “최고의 공익심사는 국민투표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매번 투표를 할 수도 없다. 따라서 우선적으로 다양한 이해를 수렴할 수 있는 조직과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공론화위원회가 성공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기존 위원회 제도에 대한 보완적 의미는 있다.

공익과 사익 간 형량의 최종결론은 사법의 몫이다. 공익을 선언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어떠한 요소가 고려되어야 하며, 그 요소들이 가지는 각각의 비중과 그 요소들의 총합이 대립되는 이해보다 우월함을 구체적으로 논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공기의 존재를 간과한다. 하지만 공기가 부족한 삶은 치명적이다. 공익은 공기다. 그래서 법적 구조화가 필요하며, 이를 둘러싼 주체들의 역할도 제고돼야 한다. 그간 관념으로 남겨두고 간과했던 공익을 다시 돌아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승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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