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휴가 때 오스트리아에 있는 ‘브레겐츠’라는 작은 도시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브레겐츠는 오스트리아 서쪽 끝에 독일과 스위스 국경에 걸쳐 있는 도시인데,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 국경을 따라 흐르는 보덴 호(湖)가 감싸고 있다. 브레겐츠 페스티벌은, 보덴 호에 한가운데 무대를 만들고 2년에 한 번씩 오페라 1개 작품을 선정해 공연하는 축제다. 올해는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가 무대에 올랐다.

브레겐츠는 오스트리아 영토지만, 빈이나 잘츠부르크에서 접근하는 게 쉽지 않아, 스위스 취리히나 독일 뮌헨을 통해서 들어가야 한다. 이왕 여행한 김에 스위스도 둘러보고자 취리히를 통해 들어가기로 했다.

계획은 이러했다. 우선 취리히 공항에 들러 렌터카를 빌린 후 2시간 정도 운전해 스위스 동쪽에 있는 ‘발스’라는 지역에서 2박을 한다. 발스는 깊고 푸른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마을인데, 그곳에 세계적 건축거장 페터 춤토르가 건축한 ‘테르메 발스 호텔(Therme Vals 7132 Hotel)’에서 알프스 산맥을 바라보면서 노상 온천을 즐길 예정이었다. 발스에서 2박 후 렌터카를 타고 브레겐츠에서 차로 약 1시간 떨어진 에어비앤비에 짐을 풀고, 오페라 공연 시작 무렵에 브레겐츠로 갔다가 다시 차로 숙소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계획 중 이동이 많기 때문에 차는 필수였다.

화려한 계획은 취리히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필자는 국내운전면허증 없이 국제운전면허증만, 친구는 국내운전면허증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차를 빌릴 수가 없었다. 핸드폰 카메라 폴더 속 필자의 국내운전면허증 사진을 보여주면서 실물 면허증을 대신할 수 없냐며 몇 번이나 통사정을 했지만, 취리히 공항 렌터카 업체는 단호하게 안된다며 선을 그었다.

이대로 여행을 망칠 수는 없었다. 부랴부랴 구글맵을 켜고 발스까지 갈 수 있는 대중 교통을 검색했다. 산골짜기 마을인 발스까지 갈 수 있는 교통편은 있었지만, 3번의 기차, 버스 1번을 타고 3시간 30분을 가야만 했다.

어찌어찌 늦은 밤 발스의 호텔에 도착해 2박은 무사히 보낼 수 있었는데, 그 다음 숙소인 에어비앤비까지 가는 대중교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위약금까지 물고 숙소를 취소한 뒤 브레겐츠 인근의 허름한 호텔로 다시 예약할 수밖에 없었다.

발스에서부터 1번의 버스와 2번의 기차를 타고 2시간 30분 정도 이동한 끝에 브레겐츠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픈카를 타고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스위스 풍경을 만끽하고자 했던 필자의 꿈은 그냥 꿈이었다. 이동에 지쳐 호텔에서 잠시 쉬다가, 공연 시간에 맞춰 호숫가로 이동했다.

고생 끝에 드디어 마주하게 된 호숫가의 무대를 본 순간, 그동안의 고생은 다 잊혔다. 그 험난한 여정을 통해 이곳까지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차고 넘쳤다. 놀라운 크기의 무대와 화려하고 정교한 세트, 웅장하면서도 뭉개짐 없는 음향은 필자를 순식간에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4400석을 꽉 채운 관객들과 무대 저 뒤편 호숫가의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오페라 공연을 감상했다.

여행도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데 멀리서 보면 희극인 듯하다. 오늘도 열심히 일하면서 또 여행계획을 세운다. 그 계획이 비록 계획 속에 머물지라도.

 

 

 

/임주영 변호사

서울회·법률사무소 Young&Partn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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