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 사건 피고인을 무죄로 만드셨다구요? 왜요?”

돌이켜보면 이것이 변호사로서 한 첫 우문(愚問)이었다. 동시에 버릇없는 질문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질문의 상대방은 30년 경력의 대선배 변호사님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쁜 와중에 후배를 가르치려던 변호사님께 연수를 갓 시작한 풋내기가 본분을 잊고 뇌를 거치지 않은 말을 했으니, 그 자리에서 크게 혼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그러나 변호사님께서는 감사하게도 개의치 않고 말씀하셨다. “전에 연수를 받던 변호사도 이 기록을 보고 같은 소리를 했지. 그렇지만 이제는 이 변호사도 변호사로서 생각하고 감정을 절제하는 연습을 해야지.”

형사사건 의뢰인이 피의자인 경우 편도체에서 솟아난 사적인 정의감이 전두엽에 고이 모셔진 ‘변호인의 의무’나 ‘형사재판의 증거주의’를 누르는 경우가 왕왕 있다. 피해자에게 감정이입을 하기도 하고, 피의자가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기도 한다. 선배 변호사님께서 과제로 주셨던 사건은 전자에 속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반증과 증거탄핵에 대한 실전 사례를 배우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사건이었다. 당시 같은 처지의 변호사들과 함께 “감정극복에는 3년이 걸린다는 설이 다수설”이라며 서로를 다독였던 생각이 난다.

아직 극복의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으나 사적인 정의감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것은 업무영역 밖으로 밀어낼 수 있게 되었다. 증거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사건의 면면만 보고 예단하는 것이 오히려 사법 정의에 독이 된다는 것을 자연스레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독이라도 그 양을 적절히 조절하면 약이 된다고 했던가. 사적인 정의감이 적절히 발휘만 된다면 사법의 각론에서 전개되는 제도적 부조리함을 개선할 동력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여전하다.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언젠가는 그 적절함을 찾을 수 있으리라 희망한다.

 

 

/이영주 변호사

서울회·법률사무소 다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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