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사회에서 내 물건 안 팔겠다는 주인의 갑질이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대체재가 전혀 없거나 구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려서 소비자가 굴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 그러나 자유무역 체제에서 그런 사례는 존재하기가 힘들다.

지난 여름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반도체의 핵심 물품에 대한 수출을 규제하고,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배제하는 전격전(Blitzkrieg)을 일으켰다. 일본 내각의 핵심 몇명이 결정하고 일사천리로 진행했는데, 마치 세계 2차 대전 초기 독일군이 장갑차를 앞세워 아르덴 고원을 돌파하고 5주 만에 파리를 점령할 때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그러나 반도체 부품이나 소재가 일본에만 있는 건 아니다. 국내 대기업들이 대체재를 점차 구하고 있고, 가지도 팔지도 사지도 않는 ‘노 아베 운동’이 일본 경제에 타격을 주고 있다. 정치 갈등 속에서도 한일 관계를 지탱하고 있던 경제와 민간 교류도 점차 위축되고 있다.

이러한 한일 갈등 상황 속에서 지난 10월 18일 금요일 경기북부회 회의실에서 제9회 삿포로 변호사회와의 교류회가 열렸다. 처음엔 약간 불편한 생각도 있었지만, 재작년 삿포로에서 열린 교류회에서 일본 변호사들의 따뜻한 환대를 생각하며 나도 반갑게 맞이했다. 삿포로 변호사회도 지난 삿포로 지진 때 경기북부회에서 보낸 위로 편지를 이야기하면서 감사의 말을 전했다.

이번 교류회의 주된 토론 주제는 전자소송이었다. 일본은 내년부터 전자소송제도를 민사소송 1심에서부터 순차적으로 도입할 예정이다. 삿포로 변호사회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전자소송을 시행하고 있는 한국의 상황을 많이 궁금해 했다.

이에 경기북부회에서는 대법원 전자소송 홈페이지에서 실제 진행되고 있는 전자소송 화면을 하나씩 캡쳐해서 일본어로 번역, 정리한 자료를 제공했다. 설명이 끝나고는 대여금을 청구하는 소장을 전자소송으로 직접 작성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삿포로 변호사님들은 굉장히 재미있어 하면서 이번 자료를 일본변호사연합회에 제공해도 되겠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는 일본법을 계수해서 법체계를 세웠지만, 이제는 일본에 전수해 줄 정도로 더 발전된 사법 분야가 많이 있다. 일본보다 10여년 먼저 전자소송 제도를 도입해서 시행하고 있고, 일본 변호사업계의 오랜 숙원인 경력법관 제도도 이미 오래 전 시행 중이다. 일본과 달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등에 소송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다보니, 이미 공법 영역에서는 일본의 사례가 중요한 선례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나라 GDP의 3배가 넘고 막대한 공공 및 민간 외교 자산으로 워싱턴 외교가에 로비를 하는 경제 강국 일본을 감정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다. 전격전에서 참호전으로 이제는 사법 분야에서 보여준 한국인의 저력을 경제 분야에서 점진적으로 보여줄 때다.

 

 

/노승민 변호사·경기북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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