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초한지를 즐긴다. 초한지는 중국 진말한초를 배경으로 항우와 유방이 패권을 다투는 소설이다. 고조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고 전한을 건국하기까지 혁혁한 공을 세운 한삼걸(漢三杰)이 있었는데, 소하, 장량, 한신이다.

이들 한삼걸은 각각 당대의 ‘명재상’ ‘명참모’ ‘명장군’이었다. 특히 회음후(淮陰侯) 한신은 중국사를 통틀어서도 전무후무한 불세출의 명장으로 많은 일화와 명언을 남겼다.

젊은 날 한신의 이상은 고고했으나 현실은 비루하기 그지 없었다. 거렁뱅이 백수로 밥을 빌어먹던 그를 혈기왕성한 이들이 얼마나 괄시했을까?

하루는 시정잡배 무리가 겁박하자 한신은 즉각 무릎꿇고 가랑이 사이를 기었는데, 이를 ‘과하지욕(跨下之辱)’이라 한다.

봉추는 와룡이 알아보는 법. 항우를 떠나 유방에게 의탁한 한신의 진면목은 소하가 꿰뚫어봤다. 1등공신 소하의 추천에도 유방이 중용을 꺼리자, 소하는 “나라 안의 선비 중 그에 비견할 자가 없다”라며 재차 강하게 천거했는데, 이것이 이른바 ‘국사무쌍’이다.

파초대원수가 된 한신은 신기묘산과 절정의 용병술로 삼진을 평정하고 북벌을 달성한다.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항우와도 맞붙는 족족 승리하기에 이르자 항우는 한신의 군략에, 한신은 항우의 무용에 서로 깊이 감복한다.

한신은 모래주머니로 둑을 쌓아 수공을 퍼붓는 사낭계, 상대의 심리를 기만하는 유인책 등의 전술을 즐겨 썼는데, 그 중에서도 백미는 강을 등지고 조의 이십만 대군을 격파한 ‘배수진(背水陣)’ 그리고 퉁소 한 자루로 패왕 항우를 침몰시킨 ‘사면초가(四面楚歌)’였다.

천하의 한신도 고조와 본인의 욕망은 통제할 수 없었다. 고조는 거대 제후 세력으로 성장한 한신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고, 토끼를 잡아 쓰임새가 없어진 사냥개는 마침내 삶아졌다. 희대의 풍운아(風雲兒) 한신, 진한교체기를 호령한 국사무쌍의 장본인은 그렇게 역사에 깊은 발자취를 남기고 떠났다.

 

 

/이충윤 변호사

서울회·법무법인 해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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