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 조국 전 장관도 산다. 아침저녁으로 아파트 울타리에는 기자들이 붙어있고, 압수수색을 했던 날 밤에는 보수단체의 고함이 요란했다. 토요일 저녁이 되면 동네 전체에 서초동에서 넘어오는 집회 소리가 웅웅 울렸다. 조용해서 좋은 동네가 더는 조용하지 않게 되었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주말에는 서초동 근처에도 가는 것이 싫은데, 그 때문인지 서초동 ‘검찰개혁’ 집회 인원이 매주 늘어나도 방관만 했다.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나뉜 집회인원은 각자 세를 키웠고, 언론은 국론분열이 심각하다고 보도했다. 한 보수 언론은 이를 두고 “한국 민주정치가 중우정(衆愚政)으로 진입했다”고 평했다.

지난 주 토요일, 저녁 먹고 산책하는 김에 서초동 집회에 들러보기로 했다. 황금 같은 주말 서초동으로 만원 지하철을 타고, 전세버스를 타고 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걸어서 30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쌀쌀한 가을 저녁, 서초대로와 반포대로가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도 집회는 질서 있고 평화로웠으며 유쾌하기까지 했다(서울 성모병원 앞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 시위가 있었는데, 경찰이 두 집회를 갈라놓아 더욱 평화로운 집회가 계속될 수 있었다).

경찰은 진입로와 출입로를 따로 두어 통행에 막힘이 없도록 통제했고, 사람들은 통제에 순순히 따랐다. 그러니 시위현장에 들어가기도, 잠깐 구경하고 나오기도 편했다. 거리에 쓰레기 하나가 없었다. 광우병 시위, 광화문 촛불시위와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두 시위를 거쳐 우리의 시위문화가 이토록 발전했나 싶어 놀라웠다. 이런 시위만 일어난다면 어떤 정치성향을 가진 시위든 한번쯤 구경할 용의가 있다. 나 같은 ‘방관자’들이 시위현장에 구경하러 와야 시위의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

집회의 원인은 분노이고, 집회의 요건은 연대이다. 집회의 본질은 외침이고, 집회의 목적은 설득이다.

그렇다면 집회의 품격은 어떻게 결정될까. 분노, 연대, 외침, 설득이 골고루 평가받아야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설득이다.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동질감을 얻고 결속력을 다지는 효과도 있겠지만, 자기 단체의 힘으로 충분하다면 남들 보라고 시위를 할 이유가 없다. 집회는 결국 집회에 참가하지 않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외침이며, 타인을 자기 편으로 데려오기 위한 캠페인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오늘, 14일에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결국 사퇴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많은 갈등을 야기한 점에 매우 송구’하다고 밝혔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갈등과 집회는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없는 것을 피하려는 행위에서 전체주의, 파시즘이 나왔다. 중요한 것은 집회의 품격이며 그것이 우리 민주주의의 건전성을 확인하는 척도다. 그리고 필자는 지난 서초동 집회에서 우리 민주정의 국격을 확인했다. 한국의 민주정치는 여전히 희망적이다.

 

 

/김우중 변호사

서울회·법무법인(유)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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