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협신문 첫 기고를 앞두고 어떤 글을 써야 할 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주요 독자층을 고려하면 1980년대 중반생인 기자가 얕은 경험으로 법조계를 진단하는 것보단, 제 주변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글은 최근 인터넷을 강타하고 있는 ‘곽철용’의 이야기로 시작해보려 합니다.

“열일곱에 달건이 시작한 놈들이 백 명이라 치자면 지금 나만큼 사는 놈은 나 혼자뿐이야. 나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 잘난 놈 제치고, 못난 놈 보내고….”

2006년 개봉한 영화 ‘타짜’에 나오는 깡패 두목 곽철용(김응수 분)의 대사 중 일부분입니다. 지금 유튜브 등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곽철용 열풍’이 뜨겁습니다. 단순 악역이라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등장인물 중 가장 신사다운 사람이었단 겁니다. 특유의 발성과 연기 덕분에 배우 김응수 씨는 ‘강제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난데없이 곽철용의 대사를 언급한 건 단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곽철용은 폭력이 업인 깡패 세계에서 ‘실력’으로 정점에 오른 인물입니다. 위 대사엔 치열한 깡패 간의 경쟁이 묘사돼 있습니다.

깡패도 그럴진대, 다른 분야는 어떻겠습니까. 치열한 경쟁은 우리 사회 도처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입시와 취업은 가장 험난한 분야로 꼽힙니다. 학창시절 성적이 평생을 좌우하는 대한민국에선 더욱 그렇습니다.

특히 20·30세대는 학창시절부터 치열한 경쟁이 몸에 밴 세대입니다. 입시부터 취업까지, 유사 이래 가장 험난한 청춘을 보내고 있다고 자타가 공인합니다. 그런데도 ‘민란’ 수준의 항거가 없었던 것은 사회 기저에 깔린 ‘공정 경쟁’에 대한 믿음 때문일 겁니다. 나보다 더 노력한 사람이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믿는 밑바탕엔, 적어도 누구에게나 기회는 평등하다는 인식을 사회 구성원이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 비리 의혹과 관련해 특히 젊은 세대의 분노가 두드러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단순히 위법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조 장관 자녀가 실력으로 “잘난 놈 제치고, 못난 놈 보낸 게”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날 때마다 밤새워 노력하던 청춘의 좌절은 깊어지고 있습니다.

국정농단 사건에 기름을 부었던 정유라 씨의 SNS 글이 떠오릅니다. “능력이 없으면 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정 씨의 글에 2017년 조 장관은 “이것이 박근혜 정부의 철학이었다”라고 일갈했습니다. 이 글은 다시 조 장관 본인을 겨누고 있습니다. “이것이 문재인 정부의 철학입니까”란 물음에 조 장관은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김기정 중앙일보 기자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