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그리던 그림을 기억한다. 나와 가족, 산과 하늘, 집과 길을 차례로 그린다. 생각해보면 건축은 사람과 자연이 아닌 나머지 모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사람, 자연, 공간 속에서 어떻게 어우러져 살 것인가 하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숙제일지도 모른다.

유현준이 말하는 건축과 도시는 철학이고 역사이고 인류학이다. 과거를 읽을 수 있고, 오늘을 이야기할 수 있고 미래를 예측하게 한다.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하고 자연을 더 자연답게 하는 건축에 대해 고민하고 제안한다. 건축 문외한이 읽어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내용이 많다.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 건축이 어떤 인재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1인 가구 시대에 맞는 건축은 어떤 모습인지, 쇼핑몰에 왜 멀티플렉스 극장이 있는지, 왜 골목길이 더 도시를 풍요롭게 하는지, 사람들이 고층아파트를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와 건축을 해박한 지식으로 종횡무진 설명해낸다. 더 나은 도시 공간 구성을 위한 제안도 덧붙인다. 특히 공공 건축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공원을 시민 접근성이 더욱 좋은 곳에 만들고 담장을 없애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게 하고, 걸어서 다닐 수 있는 마을도서관을 많이 만들자고 한다. 작더라도 가까운 곳에 촘촘하게 분포된 공원과 도서관이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인다는 것이다. 사람의 삶이 고려되지 않고 자연의 지속가능성을 외면한다면, 그 도시는 결국 쇠락하고 만다는 경고로 들리는 대목이다. “건축과 사회는 서로 연동돼 있고 공진화한다. 건축이 만드는 사회, 사회가 만드는 건축은 생명체와 같다”라는 작가의 주장은 그래서 더욱 공감이 간다.

도시와 건축이 보이는 구조물과 인프라라고 한다면, 법은 보이지 않는 가치의 구조물이고, 정의에 관한 인프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법을 다루는 이들이 철학과 역사를 비롯한 인문학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법도 사회와 연동되어 있고 공진화한다. 법은 가치의 건축물이고, 정의 사회를 위한 설계도이다. 변호사를 비롯한 법조인들은 ‘법률 건축가’라고 비유할 만하다. 우리가 사는 공간이 더 좋은 도시와 건축물로 채워지길 바라는 만큼 더 나은 가치와 정의로운 법체계가 쌓여가기를 희망한다. 결국 우리가 사는 사회를 ‘잘 사는 곳으로 만드는 길’이기 때문이다.

책 마지막 장을 덮으며 ‘어디서 살 것인가’에 더해 ‘어디서 잘! 살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 본다. 더욱 ‘잘 사는 좋은 세상’을 우리 아들과 딸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유현준, 을유문화사)』, 『건축을 꿈꾸다(안도 타다오, 안그라픽스)』,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승효상, 돌베개)』

 

 

 

/장훈 인천광역시 미디어담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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