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 만남에서 처음 만나 명함을 줄 때, 약간의 어색함을 덜기 위해 웃으며 말한다. “억울한 일이 있으시면 연락하세요.” 부부를 함께 만날 때, 남편과 아내에게 각각 명함을 따로 주면서 때론 심한 농담을 한다. “먼저 연락하시는 분이 유리합니다.” 오래된 부부들은 대부분 매우 재미있어 하신다.

변호사가 되어 얼마 안되었던 시절에 나는 아마도 변호사가 좀 대단한 직업이라고 생각했었던 모양이다. 서로를 잘 모르는 자리에서 자기 소개를 할 때, 직업을 밝히지 못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변호사라는 직업을 알면, 부담을 가질 수도 있다는 나 혼자만의 공연한 걱정이었지만, 그 자체가 이미 우월감이다. 그러나 변호사란 직업에 대한 특권의식이 사라진 요즘, 주저함없이 직업을 밝히게 된다. 그러면서 편하게 명함을 줄 수 있고 농담을 던질 수도 있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변호사는 어떤 친구인가. 미국 속담에 “변호사는 가장 나쁜 이웃이다”라는 말이 있다. 변호사는 무엇이 옳고 그른가 일일이 따지고, 잘못한 상대방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법적 책임을 묻고, 누군가 법률 지식을 물어오면 냉혹하게 시간당 자문료를 청구하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다.

변호사란 직업에 많은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 억울함을 밝히고자 안간힘을 썼건만, 판사들은 서면을 꼼꼼하게 읽을 시간조차 허락되어 있지 않고, 부득이 판결하기 편한 쪽을 택해 판결을 내린다. 영리하게 법을 악용하는 상대방에게 당하고, 진실이 외면당해 억울한 결과를 감수하여야 하는 것은 오로지 의뢰인의 몫이다. 어렵게 승소 판결문을 받아 들고도 집행이 어려워 판결문이 한낱 종이조각이 되어 버리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도대체 소송으로 사람들의 진실을 밝힐 수나 있는 것인지, 소송으로 정의를 실현할 수나 있는 것인지…. 사법제도 자체가 한계와 모순을 상당히 내포하고 있어서 차라리 소송을 하지 말라고 말리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호사가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사람들이 처한 수많은 법률 문제에 대해 수임을 하여 함께 해결하는 것 뿐 아니라, 문제 해결의 실마리라도 알려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 법률지식은 사람들에게 유용하고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지만,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잘 이해하기 어렵기에 법률 전문가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에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이를테면, 내게 언제든 편하게 전화해서 의논할 의사가 있다거나 세무사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든든할까. 상담 시간을 예약하고, 상담료를 책정하고 지불하는 복잡한 절차 없이 불쑥 전화하여 내 문제를 간단하게 의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나는 나를 만나는 사람들 모두에게 마치 그들이 오래 전부터 내 친구였던 것처럼 편하게 연락해서 불쑥 자신의 문제에 대해 물어볼 수 있는 변호사 친구가 되기로 한다.

이제는 명함을 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편하게 전화하시고 언제든 물어보셔도 돼요.” 나의 보잘 것 없는 지식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변호사 친구가 되어 주고 싶다는 소박한 표현이다.

 

 

 

/이재숙 변호사

서울회·법무법인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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