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예술가는 육체노동으로 원하는 조형물을 만들어주고 돈을 받는 기능공 정도로 여겨져 왔다. 그러다가 르네상스에 들어서면서 예술가는 물질에 정신을 부여하여 작품을 완성하는 장인으로서 인정받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때 비로소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천재’ 예술가가 탄생한다. 이들은 후원자에게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며, 사회적으로 귀족계급과 같은 부를 누리게 된다.

하지만 근대로 접어들면서 이런 ‘천재’ 예술가 이미지는 소수의 부를 누리는 천재와, 가난 속에서 결핵과 같은 질병의 이미지와 함께 소외된 길을 가는 천재의 이미지로 이분화 된다.

2011년 한 여성 시나리오 작가가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그동안 너무 도움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제 집 문 좀 두들겨 주세요”라는 쪽지가 마지막 유언이 되었고, 그녀의 절실함에 대한 무응답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이 사건은 예술인의 최소한의 생계 유지를 위한 사회안전망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이를 계기로 예술인의 지위를 보장하기 위한 ‘예술인 복지법’이 제정되었다. 헌법 제22조 제2항에서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 보호한다”고 명시되어 있었으나 예술가의 지위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은 제정되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왜 예술가만 특별하게 보호해야 하는가? 예술가가 노약자 계층도 아닌데, 왜 예술가의 복지를 위해 특혜를 주어야 하느냐는 반론이 가능하다. 하지만 유네스코에서 발표한 ‘예술가의 지위에 관한 권고’에 따르면, 예술가가 특별하기 때문에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가 스스로의 일에 충실하기 위해 다른 시민만큼의 보장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 활동은 창작의 자유 및 창작 여건을 보호받아야 역량을 펼칠 수 있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이 권고에서는 예술의 발전을 위해 예술인에 대한 창작의 자유, 창작 활동의 여건 보장 등 혜택이 주어져야 함을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예술가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 모두 예술에 대한 지원이 사회적 약자에게 주어지는 무조건적 보호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예술을 향유할 때에는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당연시 되어야 하는 점을 성문화된 법률로써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의 권리를 보호받으며 예술 활동이 이뤄질 수 있도록 법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예술가와 향유자 모두의 입장에서 안타까운 일이다. 가장 이상적인 예술가의 이미지는 배고픈 고흐도, 작품 값이 수억원에 달하는 피카소도 아닌, 자부심을 갖고 우리의 상상을 현실로 실현하며, 영혼 저 너머까지 울림을 주는 열정적인 예술가의 모습일 것이다.

 

 

/김영철 변호사

법무법인 정세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