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이다. 시월, 가을은 편지의 계절이다. 편지는 침묵으로 전하는 마지막 한잔 술이다. 고은 시인은 ‘가을편지’라는 노랫말에서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라고 읊조렸다.

편지를 쓰는 것으로 그냥 충분해지는 마음, 수신인은 중요하지 않는 그 마음이 가을 마음이다. 저절로 편지를 쓰게 만드는 가을은 그래서 맑고 푸르다. 저 하늘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신이 홀로인 자아를 깨워 누군가가 너의 수신인이라며 속삭이는 계절, 그게 가을이다. 채움과 비움이 함께 공존하는 시간과 공간 속에 누군가는 언제나 존재한다.

어제, 아내에게 결혼 사십년 만에 손편지를 부쳤다. 내일쯤 아내에게 배달될 것이다. 아내는 연애시절, 주고받았던 편지를 아직도 날짜순으로 차곡차곡 보관하고 있다. 빛바랜 그 편지들을 보는 순간 아내는 여전히 맑고 고운 수정이 된다. 수없이 다짐했던 편지 속 약속들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나는 언제나 그 편지 앞에서 빚쟁이가 되지만, 그 편지는 나를 구원해 주기도 한다. 그래서 내일이 남아 있다는 구차한 변명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일상적 대화가 문자로 우주를 날아다닌다. 수많은 말을 전하지만 아내에게는 모두 죽은 언어일 뿐, 그래서 살아 있는 언어를 전하고자 사십년 전처럼 손편지를 썼다. 손편지를 쓰다 보니 몇 문장이 마음에 흡족하지 않아 다시 쓰기를 세 번쯤 했다. 이처럼 손편지는 쓰다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혹은 글씨가 잘못 써지면 꼬깃꼬깃 접어 휴지통으로 던져 버리는 데에 묘미가 있다. 하지만 버려진 편지 역시 간절한 나의 마음이고, 미처 전하지 못한 나의 진실과 순수이다.

가수 김민기는 고은 시인의 저 가을마음을 아름다운 선율로 엮었다. 1969년에 작곡했으니 50년이나 된 묵은 곡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오늘 새벽에 작곡된 것처럼 따뜻하고 잔잔하다.

고은 시인은 2절과 3절에서 “…낙엽이 흩어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모든 것을 헤매인 마음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헤매인 여자가 아름다워요”라고 노래한다. 가을남자는 모든 것을 헤맨 후에야 전혀 알지도 못하는 그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한다. 그대로 상징되는 수신인 역시 “헤매인 존재”이기에 서로 인간스럽다.

이 가을은 서로에게 그런 존재였으면 좋겠다. 법조타운 향나무 사거리에서 좌우 이념으로 갈려 분노하며 미워할 것이 아니라 잊고 있던 따뜻한 사랑을 일깨우는 누군가로 아름답고 싶다. 손편지를 받은 아내가 행복해 할까….

 

 

 

/오시영 변호사

서울회·법무법인 동서남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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