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한 인연이 있었던 후배 변호사를 만났다.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이후 쉬지 않고 일해왔던 그는, 다음 도약을 하기 전 잠시 쉬는 중이었다.

눈을 반짝이며 즐거운 근황을 전하고는 “책임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요즘이 정말 좋아요”라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진심으로 맞장구를 쳤다. 나 또한 잠시 업을 쉬다 최근 다시 시작하면서 서면에 쓰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무거운지 새삼 느끼고 있었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개인의 이야기가 변호사의 검증과 법률적 가공을 거치는 순간 누군가의 인생에 영향을 미칠 무게를 가지게 되니 말이다.

검증의 과정은 의뢰인의 일방적 주장과 그가 제공한 빈약한 증거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으니 쉽지 않은 일이다.

의뢰인이 무심코 한 이야기에 담긴 의미, 사소하다 여겨 말하지 않은 법률행위의 존재 여부를 샅샅이 훑어야 한다.

본인에게 유리한 부분만 편집한 녹음본, 급조한 것이 자명한 문서 등은 그나마 사전에 통제 가능한 위험이다. 변호사 입장에서는 자신이 통제하지 못한 위험이 실현되는 경우가 최악이다. 그렇지만 이 모든 과정이 사법기관의 종국 결정에 무게를 얹는 과정이므로 뼈아픈 일이라도 감내해야 한다.

말의 무게에 대해 예민해지다 보니 평범한 단어로만 구성된 문장을 읽을 때도 그 문장이 ‘참’인지 검증하기 위해 투입된 대가에 비추어 그 무게를 가늠하게 된다.

그런데 요즘 부쩍 효율, 조직의 명분, 당파적 이익에 따라 말에 무게를 얹는 과정을 가벼이 여기는 사례가 언론보도 분야에서 증가하고 있다. 매일 ‘단독’을 달고 쏟아지는 일부 ‘아니면 말고’ 식의 보도가 단적인 예시다. 염려스럽게도 법조계 일부가 이러한 보도에 일조하고 있다는 시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부디 법조인만은 어떤 경우에도 말에 무게를 얹는 과정을 무시하는 과오를 저지르지 않길 바란다.

 

/이영주 변호사

서울회·법률사무소 다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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