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아들에게 불법 병역면제사실이 있다고 김대업씨가 주장하며 병풍(兵風)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다. 김대업 전직 부사관은 본인이 2001년 검찰 병역비리 수사에 수사보조원으로 참여했으며 ‘병역비리에 대한 녹음테이프’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 후 언론은 김 씨의 주장을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문제는 여론을 악화시켜 이 후보가 낙선하게 된 결정적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조사결과 허위주장으로 밝혀졌고, 김 씨는 수사관자격사칭 등으로 기소돼 징역 1년 10개월을 확정 받았다.

이 당시 녹음테이프가 있다는 뉴스가 속보로 나오면서 마침 같이 저녁식사를 하던 정치학 전공교수와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분의 말씀은 정치인과 법조인은 어떤 일에 관해 성공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사건이 일어났을 때 법조인은 이 테이프가 진짜냐 아니면 가짜냐 여부가 중요하지만, 정치인은 이 테이프가 표에 도움이 되면 성공한 프로젝트이고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 프로젝트가 된다는 것이었다. 선거에서의 당선이 우선순위지, 진실이냐 아니냐 여부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때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법조인이 정치계에 뛰어들게 되면 심한 가치관의 혼란이 오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법무부장관은 진실을 중시하는 법조계와 선거에서의 당선을 중시하는 정치계가 교차하는 자리에 서게 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법무부장관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고, 긴장관계에 있는 법조계와 정치계에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

법무부장관은 진실 여부보다는 선거에서의 당선을 최우선 목표로 하는 정치계가 선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개별적인 사실들의 진위 여부를 중시하는 법조계에 맥락상 적정 균형점이 무엇인지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법무부장관은 정치 공학적 관점에서 정치계의 진영논리에 따른 지시를 성실히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법조계와 정치계 모두로부터 신뢰를 얻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법무부장관에게는 다른 장관과는 달리 도덕성과 준법정신에 있어서 조금 더 엄격한 기준을 요구받게 된다. 그 사람의 지난 삶의 모습을 보면 앞으로의 행보가 예측되기 때문에, 그 사람의 말이 아닌 행동이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어떤 특정인이 법무부장관에 적합한지 여부에 대해 세세한 사항을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치계의 셈법이 선을 넘지 못하도록 균형을 잡아줄 수 있는 무게감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지 여부를 가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오피니언 리더인 법조인들이 이 선에 좀 더 집중하고 존중한다면, 여론에 영향을 미쳐 훌륭한 법무부장관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주지홍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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