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히 흘러가는 역사적 물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잠시 피어났다가 사라지는 한강의 물거품처럼, 언어는 그 시대의 변화에 따른 도전과 반응으로 나타나는 시대의 정신을 반영하면서 이룩된 문화의 산물이다.

유럽의 많은 민족들은 로마 제국에 의하여 칼로써 자기네 조상들이 굴욕과 강요를 당했음에도 로마 제국의 언어로 말하고 생각하였다.

수렵채취의 인류가 약 1만년 전에 곡식을 재배하고 가축을 기르는 정착 생활을 시작하면서 낳게 된 잉여농산물의 처분과 관련하여, 더 평안한 곳으로 모여든 많은 사람들이 신용, 돈, 공동체의 질서와 권력 등을 형성하고, 하나의 정치체제로서의 정부형태를 이루어 더 많은 영토를 집어삼키고, 더 나아가 각기 다른 여러 문화들의 정체성을 극복하면서 탄생한 것이 바로 제국이라는 정치질서이다.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영어의 사용에서도 쉽게 엿볼 수 있듯이 오늘날 어느 민족의 고유문화는 하나도 없으며, 지구촌은그 내적 모순으로 끊임없이 변화하여 왔다. 현재 우리가 일제가 남긴 수많은 전문용어들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전통적 의미의 한자 용어 대부분은 사서삼경이나 도덕경 등과 같이 유학이라는 정치질서 아래서 각 시대적 감정이 낳은 다양한 문화의 소산을 반영하고 역사적 의미를 더해 가면서 계승·발전되어 온 것이다. 그런데 일제가 서양의 새로운 학문을 선도적으로 도입하여 번역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학문적 취약성으로 말미암아 우리말 말살정책과 같이 뿌리 깊은 동양의 전통문화를 배격하는 정책을 폄에 따라, 일제의 많은 전문용어들은 그 한자가 지니는 전통적인 의미를 왜곡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렇기에 정치, 경제, 헌법, 법률, 음악등등 일본식 학인에 의하여 왜곡된 제국의 모든 용어들에 대하여는 법고창신(法古創新)하는 마음으로 천지개벽(天地開闢), 천도지덕(天道地德), 천문지리(天文地理), 천원지방(天圓地方) 등등과 같이 기초개념에 대한 원리를 새롭게 이해하고, 우리의 미래 시각으로 본래적 의미의 용어를 재발굴하고, 천겁이 지나도 여전히 새롭게 느껴지도록 왜곡된 제국의 수많은 용어들을 하나하나 개선하여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무명(無名)은 천지시(天地始)이고, 유명(有名)은 천지모(天地母)라는 도덕경 문구에 표현된 바와 같이, 여와 여신이 흙으로 빚은 사물에 한 숨을 불어넣어 하나의 생명을 탄생시키듯이, 옛날 성현들이 붙인 만물의 이름에는 생명 현상의 궁극적인 원리가 반영되어 명명된 것이다. 인류가 살아가는데 기본이 되는 DNA, 바로 도(道)를 전하기 위한 도서 내지 시서(詩書)가 문화의 본래의 문자적 의미이다.

/김병철 변호사

충북회·법무법인 청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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