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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선]글 좀 읽었다는 자(者, 놈 자)들이 문제다
장용진 아주경제 기자  |  ohngbear@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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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호] 승인 2019.09.02  10: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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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 9월 21일 일본은 운요호 사건을 일으켜 조선 침략을 시작한다. 당시 일본은 자국 군함인 운요호를 강화도 해안에 바짝 붙여 항해하도록 했다. 사실상 조선의 경고사격을 유도했던 셈. 실제로 조선 수군이 경고사격을 하자 운요호는 기다렸다는 듯 반격에 나섰다. 당시 조선수군의 경고사격은 지극히 정당한 조치였건만 일본은 ‘국제법 위반’ 운운하며 조선에 책임을 뒤집어 씌웠고 엄청난 배상금을 강요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강화도 조약의 전말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이상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운요호는 300톤급 소형 함정이었다. 조선 수군의 판옥선이 200톤급이었다고 하니 어느 정도 크기인지 짐작이 간다. 소형 증기기관이 하나 있었지만 주동력은 바람과 돛에 의존하는 구형 함선이었다. 무장도 155mm급 함포 2문이 전부였고 승조원은 50명에 불과했다.

조선은 그보다 앞서 벌어진 신미양요와 병인양요 당시 운요호보다 몇배로 강한 함선과 싸워 이겼다. 신미양요 당시 출전한 미군 함선은 1300톤급 호위함인 콜로라도호를 비롯해 3척에 달했고 병력도 1000명이 넘었다. 병인양요 때 출동한 프랑스군은 세계 최강급인 3000톤급 장갑순양함 프리모게호를 비롯해 5척의 군함과 3000명의 병력을 동원했지만 조선을 굴복시키지 못했다.

일본이 “국제법 어쩌구”하면서 압박했다는 것도 의문이다. 타국 해안에 군함을 들이댄 것이 국제법 위반이지, 경고사격을 한 것이 국제법 위반일 리 없다. 게다가 당시 일본 국력이 막강했던 것도 아니었다. 조선이 놀라자빠졌던 운요호도 실은 일본이 가진 함정의 전부였다. 우리는 지금도 당시 일본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개화했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조선과 격차가 그리 크지 않았다. 오히려 경제기반은 조선이 일본에 앞서고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도 조선은 일본에 졌고 결국엔 나라를 빼앗겼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리고 우리는 왜 지금까지 일본이라면 무조건 우리보다 월등히 강하다고 단정을 짓고 마는 것일까?

세계 전쟁사를 돌아보면 싸우기도 전에 패배한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대부분 싸우겠다는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막강한 적이 쳐들어오니 싸워봤자 소용없다고 자포자기 해버리는 경우다.

그런 자리에 앞장서는 건 언제나 글줄이나 읽었다는 식자층이다. 144년 전 강화도 조약 때도 마찬가지였다. 역사는 반복된다. 전범국이 ‘국제법’ 운운하는 것이나 군사독재 정권에 몇 푼 건네주고 보상이 끝났다고 하는 것은 물론, 덮어놓고 “우리는 일본에게 진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그러하다. 역사의 교훈은 어쩌면 간단한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장용진 아주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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