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모 장관 후보의 딸 문제로 시끄럽다. 최근 우리나라 정치의 여러 장면에서 아킬레스건이 자녀 문제였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우리가 남의 자녀 교육 문제에 흥분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우리 자신의 자녀 교육 문제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의 방증이다.

조선시대에도 부모들은 자식들이 글공부를 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출세하는 것에 온 정성을 다해 뒷바라지를 했을 것이다. 그것이 입신양명이요, 가문을 살리는 길이었으니까. 그 전통은 현재까지 이어져 자식들의 교육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세계에서 으뜸인 듯하다. 사교육의 극성도 그렇고, 사교육의 메카라고 불리는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것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

일제 식민지의 갖은 수탈과 6.25 전쟁의 비극을 지나, 그 폐허의 현장에서 결연히 일어난 것도 결국은 우리나라 국민의 교육열, 우리 부모들의 자식 교육에 대한 지지 때문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런 자원이 없는 나라가 오로지 인적 자원 하나로 승부를 걸어, 해방 50년 만에 OECD 국가에 진입할 정도의 경제성장을 이룬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심지어 미국 전 대통령 오바마가 “한국의 교육 현실을 배우라”고 자신의 참모들에게 이야기했다는 일화도 있다.

한국의 교육열의 긍정적 효과를 인정하면서도, 이제는 자식 교육에, 아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자식을 소위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에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 우리 사회, 우리 부모들이 과연 제대로 가고 있는지 반성을 해 볼 시대가 왔다고 생각한다.

자녀 교육 문제에 지나치게 민감한 것은 아직도 우리가 소위 ‘학벌’과 ‘스펙’으로 줄 세우기 하고 있고, 사람을 보지 않고 그 사람의 배경을 보기 때문이 아닌가. 또한 사람에 대한 이런 잣대를 통해 이 사회의 기득권이 대물림 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국내 유수의 대기업이 소위 ‘블라인드 채용’이라는 방식을 채택하여 학력을 전혀 기재하지 않은 서류로 채용 심사를 한다고 한다. 이것이 말뿐인지, 정말로 출신학교를 배제하고 인재를 채용하는 것에 효과적으로 작용을 하는지에 대한 평가는 아직 접하지 못했지만, 이제 우리 사회도 분명 변하고 있다. 실력 위주, 열정 위주로 인재를 뽑는 분위기가 서서히 형성되기 시작했고, 자신이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고 그 일을 통해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이 되고자 하는 젊은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스펙’이 아니다. OECD 국가라는 양적 성장의 이면에는, 자살률이 가장 높은 국가라는 부끄러운 현실도 있다.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진정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를 스스로 느끼고 찾아갈 수 있는 지혜와 생명력을 길러주는 것.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교육 환경을 만들어 주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것이 정말 알고 싶다. 이것이 온 나라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뉴스의 팩트 체크보다 오늘 내가 더 궁금한 뉴스다.

/이재숙 변호사

서울회·법무법인 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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