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초속 5cm’를 만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절제되고 조용한 감성을 누구보다 좋아한다. 만화작가 미우라 켄타로가 30년째 연재 중인 ‘베르세르크’는 책의 형태를 띤 모든 출판물 중 단연 으뜸이다. 한 때 락 그룹 X-Japan의 노래를 외우다시피 즐겨 들었고, 후쿠오카의 나카스 포장마차 거리를 최고의 여행지로 분류한다.

하지만 현 일본 정권의 적대적 외교 정책과 우경화는 반대한다. 아베의 정치적 방향성이 편향됐고,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 일본 극우 인사들의 망언을 진저리나게 싫어한다. 대법원의 전범기업 재판 결과가 이성적·합리적 판결이라 단언하며, 문재인 정권의 대응은 다소 아쉬워도 그 방향성에 대해선 동의하는 편이다.

이런 나의 현재 정서와 판단을 한국 포털사이트에 대입해본다. ‘다음’에선 아마 ‘토착 왜구’라 거센 비난을 받을 것이다. 신카이 마코토의 영화에서 대일본제국에 대한 향수를 찾을 수 있다거나, 베르세르크에 나타난 일부 잔인한 장면들이 일본인의 천성이라며 이를 동조한 나 역시 친일주의자로 매도될 것이다. X-Japan은 말해 무엇하랴. 그룹 이름에 재팬이 있는데. ‘네이버’였다면 어떨까. 문재인 정권의 대응에 일부 동의했다는 이유로 ‘좌좀’이 될 것이며, 대법원 결과를 수긍한다는 이유에선 ‘구악’이 될 공산이 농후하다.

나는 토착왜구도, 좌좀도 아니라고 스스로 확신하나, 한국 사회를 투영하는 두 포털의 극명한 증오의 판단 방식에선 둘 중 하나로만 비춰진다. 기사 또한 그러하다. 자칫 정권 옹호적으로 읽힐 만한 기사는 다음에선 포털 메인, 네이버에선 낮은 조회수를 기록한다. 슬프도록 증오와 편협이 가득한 시대다.

이런 증오의 시대를 주도하고 있는 몇몇 인사들이 변호사라는 점은 매우 유감이다. 한국 사회 오피니언 리더이자, 지식인의 대명사인 변호사들이 유튜브 등을 통해 한 말들은 간혹 “내가 잘못 들었나?”라는 생각마저 든다. 극우 진영의 한 변호사는 탄핵이라는 법률적 용어를 앞세워 현 정권에 난도질에 가까운 증오의 단어들을 뱉어내고, 이른바 좌익 진영의 한 변호사는 극우 쪽 인사들에 대해 글로 옮기기 힘든 극언을 쏟아낸다.

언론출판 및 발언의 자유가 보장된 대한민국이라지만, 다른 직역도 아닌 변호사들이 주도하는 이런 증오의 악순환 구조는 불편하다. 발언은 얼마든지 하시라. 그러나 그대들이 대한민국 법 체제의 한 바퀴임을, 변호사라는 이유만으로 ‘맞는 말 일거야’라고 믿어버리는 일반 서민의 존재를 반드시 떠올려야 한다. 변호사는 법정에서도 그러하지만, 사회에서도 갈등을 중재하고 지혜를 발휘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는 희망이 아니고 직역의 의무다.

/정재호 한국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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