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려다 순국하신 이준 열사를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헤이그.

헤이그는 국제사법재판소(ICJ), 상설중재재판소(PCA),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1923년부터 매년 여름 헤이그 국제법 아카데미가 열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일본과의 갈등이 격화되던 지난 7월, 홍진기법률연구재단 지원을 받아 헤이그 국제법 아카데미 국제공법 과정에 참석했습니다. 만약 일본 정부의 주장대로 제3국을 통한 중재위가 구성될 경우, 헤이그가 그 무대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전세계 수강생을 대상으로 진행된 3주 과정의 마지막 순서로 ‘국가-투자자 분쟁해결(ISDS)’을 주제로 한 일본 교수의 강연이 있었습니다. 강의 도중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제3조 제2항 중재위 회부 조항을 언급하면서 중재에 응할 의무가 있다는 언급이나 2012년 중-일 영유권 갈등 당시 중국 시위대에 대해 폭도(riots)라는 표현을 쓴 탓에 일부 참가자가 사무국을 상대로 항의서한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분쟁의 해결수단으로 국제법을 대하는 동북아 3국의 상이한 시각을 보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국제법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 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또한 인도-파키스탄 간 분쟁(Jadhav Case)에 대한 국제사법재판소의 선고를 방청하면서 파키스탄 출신 임시재판관(judge ad hoc)이 유일하게 자국에 유리한 반대의견을 내는 것을 지켜보며, 아직 국제사법재판소 재판관을 배출하지 못한 우리나라의 현실이 아쉬웠습니다.

이준 열사 기일을 맞아 헤이그 남서쪽 공원묘지 내 묘역지도 방문했습니다. 참배를 마치고 밤 10시가 돼서야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헤이그의 거리를 걷다보니 112년 전 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울분을 토하셨을 열사의 모습이 상상되어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습니다.

국제형사재판소를 비롯한 다양한 국제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배 법조인을 떠올리면 위안이 되면서도, 한편으론 법학전문대학원 제도하에서 국제법에 관심을 갖기 녹록하지 않은 현실에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대법원 판결 및 그에 따른 강제집행에 대한 일본 정부의 부당한 수출규제로 인해 외교적 해결책이 난관에 부딪힌 지금, 국제법에 의한 해결의 실마리는 없을지 고민해 봅니다.

특히 국내 민사소송에서는 요구하기 어려운 사죄(satisfaction)나 과거를 부정하는 언행에 대한 재발방지 약속과 같은 구제책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해결에 한걸음 더 다다를 수 없을지 상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동료들이 법전원 내에 더 많아지길 소망합니다.

/강영준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10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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