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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싱가포르 협약 발효와 국내외 법질서의 대변환
최재석 변호사, 대한법률구조공단 상임조정위원  |  lawnsmile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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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호] 승인 2019.08.26  12: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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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7일, 세계 계약법 질서와 민사소송·집행법 체계에 지각변동이 있었다. 진앙지는 동남아시아의 작은 도시국가 싱가포르. 대사변은 ‘조정에 의한 국제화해합의에 관한 UN협약(United Nations Convention on International Settlement Agreements Resulting from Mediation)’ 통칭 ‘싱가포르 협약(이하 ‘협약’)’의 국제 서명식이었다.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 당초 예상과 달리, 협약서명행사 및 회의에 70여개국에서 1500여명의 대표자들이 참가했고 서명식 당일 미국, 중국, 한국을 비롯한 46개국이 가입서명했다. 1959년 발효하고 나서 제도의 보편성을 담보하는 규모의 가입국이 확보되기까지 수십년이 걸린 ‘외국 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에 관한 협약(일명 ‘뉴욕협약’)’과 비교해 볼 때, 또한 작금의 미·중 무역전쟁, 세계 전반의 보호무역기조 강화 와중에 실로 놀라운 규모와 속도다.

서명식 대표연설에서 리셴룽 싱가포르 수상은 이번 협약이 “다자주의적 거래질서에 대한 강력한 지지의 선언”이며 “조정은 국제적 분쟁 해결에 있어 재판·중재와 함께 세 번째 퍼즐 조각(missing third piece)”이라고 말했다. 사실 조정은 인류 역사상 분쟁해결방식의 원형(prototype)이다. 앞으로 협약은 비준, 수락 등의 세 번째 문서 기탁 후 6개월이 되면 발효한다. 대략 2020년 상반기 발효가 예상된다.

이번에 우리 정부(주관부처 법무부)가 사전에 충분한 고려와 준비 끝에 서명국 명단에 곧바로 대한민국의 이름을 올린 것은 매우 현명한 처사였다. 국내외 법의 지배 원칙과 다자간 자유무역거래질서를 존중하는 대한민국의 의지와 책임감의 표현이자, 국제조정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적 결단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협약 서명은 이제 시작일 뿐, 협약의 실제 발효와 함께 관련 제도를 효과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무엇보다 협약의 비준(비준 동의) 및 기탁 절차를 신속하게 마무리해야 한다. 정당, 정파 간 다툼이 있을 수 없는 사안이기에 처리에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협약과 연동돼야 할 법률을 조속히 정비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뉴욕협약에 가입하여 조약으로 발효시킨 1973년 5월 9일 이전에, 이미 국내 중재의 기본법인 중재법이 존재했다. 그런데 아직 조정의 기본법이 되는 ‘조정법’이 없다. 현행 민사조정법은 물론 70여개 행정형 조정 근거 법률은 결코 조정(기본)법이 아니다. 협약은 ‘법원의 절차 중에 체결된 화해합의(settlement agreements…concluded in the course of proceedings before a court)’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또한 조정인이 분쟁당사자들에게 ‘해결방안을 부과하는 권한(authority to impose a solution)’을 갖고서 하는 조정은 협약이 상정하는 조정이 아니다. 협약과 함께 조정에 관한 UNCITRAL 모델법, EU 조정지침 등을 모범으로 하여, 법원의 사법절차와 절연되어 중립자(Neutrals)인 조정인이 분쟁당사자들의 자율적, 우호적 분쟁 해결을 지원하게 하는 진정한 조정기본법을 조속히 제정해야 한다.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조정산업진흥법(안)’의 처리는 법체계적으로나 중요도에 있어 후순위다.

협약의 핵심은 국제 상사분쟁의 조정화해합의(Settlement Agreement)의 국내 ‘집행’과 ‘원용’에 있다. 민사소송법, 민사집행법에 이를 보장하는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상사분쟁에 관한 외국의 조정화해합의에 대해서만 소송(집행)법상의 예외를 인정하는 법체계는 논리적 모순과 평등권 침해가 된다. 그렇기에 조정기본법은 국내의 민사, 상사 분쟁 모두에 대한 조정을 포괄해야 하고, 예외가 아닌 원칙으로서 (민간)조정결과의 집행·원용을 허용해야 한다.

이는 현행 중재법이 국내 민·상사 제반 중재판정의 승인·집행을 외국 상사중재판정의 승인·집행보다 불리하게 취급하지 않는 것과 같다. 정확히는 국내 중재판정의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 부여(중재법 제35조) 및 승인·집행(동법 제38조)이 선행하는 개념이고, 외국 중재판정의 승인·집행에 있어 이보다 더 엄격한 조건이나 더 높은 비용을 부과하지 않는 것이다(뉴욕협약 제3조 및 동법 제39조). (민간)조정은 법원 판결, (민간)중재와 함께 민사(상사 포함) 분쟁 해결 방식의 3원 체계를 형성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위와 같은 조정 관련 법제 정비 못지않게 조정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과 문화 형성이 절실하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 민·상사법과 민사소송 체계의 근간은 당사자자치, 계약자유의 원칙, 처분권주의이다.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라는 법언을 고려할 때, 공정하고 중립적인 조정인이 주재하는 조정절차를 통한 당사자의 자발적, 임의적 화해합의내용에 집행력을 부여하는 것은 현재의 공증제도와 비교하더라도 전혀 무리가 아니며 신뢰사회의 토양이 된다.

또한 이제는 법원조정, 행정형 조정 모두에서, 유·무형의 영향력을 가지거나 비중립적인 이의 절차 주재와 권유(조정안 제시)를 더 이상 조정으로 불러서는 안된다. 미국 연방 ADR법(1988)은 조정방식과 함께, 법원이 접수한 소송사건을 중재에 회부해 중재인으로 하여금 중재판정하게 하는 방식(다만, 중재판정에 불복이 가능하고 불복시 새로운 재판이 개시된다)을 규정하고 있다. 우리의 법원 재판, 중재, 조정제도의 상호 발전과 국제적 선도역할을 기원한다.

/최재석 변호사, 대한법률구조공단 상임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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