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검색을 하던 중에 블로그에 포스팅 된 글을 우연찮게 보게 되었다. 변호사는 현대판 기사라는 글이었다. 서양 중세의 군주를 위해 충성을 맹세하고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를 들고 전쟁터에 나갔던 기사에 빗대어 변호사는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법과 논리라는 무기를 들고 법정이라는 전쟁터에 나간다는 내용이었다. 읽어보니 그럴싸했다. 법을 두른 기사라…. 기사라는 단어 자체가 그다지 부정적인 느낌은 아니라서 썩 괜찮았다.

사실 요새는 변호사라는 직업이 너무 흔하고, 이리 치고 저리 치인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어디 모임 자리에 가도 주위 사람들에게 변호사라고 하면 “아, 그래요” 하면서도 “나도 변호사 많이 아는데”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부분은 자기가 아는 변호사들의 칭찬보다는 욕을 한다. 그런 그들의 말에 “뭐 좀 그런 분들이 있죠”하며 멋쩍은 웃음으로 넘기긴 하지만 변호사가 그다지 환영받는 직업군은 아니구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런 인식의 형성에는 일부 변호사들이 처신을 똑바로 못하는 게 원인이기도 하겠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는 사회 전체적으로 변호사를 더 많이 접하게 되면서 법이라는 걸 내세우기는 하지만 결국 언변으로 먹고 사는 서비스업이라는 실체를 알아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장사치, 용병, 급기야 반사기꾼이라는 말까지 등장하는 상황에서 법을 두른 기사라는 황송한 표현을 보게 되니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국선전담변호사를 그만두고 개업을 한지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고, 그래야 그 인연의 고리로 사건을 소개받게 된다.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찾지 않고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만 찾는다. 남의 고민을 들어주고 그걸 어떻게든 풀어내려고 낑낑대지만, 돈을 받았으니 돈값은 해야지 하며 스스로를 다독거린다. 이 정도 스트레스는 꼭 변호사만이 아니더라도 모든 생계형 자영업자, 직장인들의 기본 아닌가하며 자위를 하지만, 나의 몸은 머리와 달리 매우 정직한지 체중이 늘었다 줄었다 널뛰기를 한다.

요즘 들어 부쩍 현재의 나의 모습을 알았다면 20년 전 그때 기필코 사법시험에 합격하리라는 결연한 각오를 다지고 기합이 바짝 들어간 상태로 도서관을 다녔을까 부질없는 생각도 해본다.

주말 밖에 시간이 되지 않는다는 의뢰인이 있어 주말에 나와 세 시간 넘게 상담을 했다. 항상 그러하듯 애초 예정한 시간은 넘치고 그 사연에 지쳐간다. 하지만 이걸 어떻게든 풀어내서 우리 의뢰인의 창과 방패로 만들어야 한다. 중세의 기사들도 군주의 명을 받고 목숨을 건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이런 마음이었을까. 그들은 기사로서의 삶이 행복했을까. 생각해본들 답도 안 나오는 한심한 소리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해야지, 행복이라는 것을 의식한 순간 더 불행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이미 전쟁터는 정해졌으니 법을 두르고 나가보자. 이왕 하는 싸움 이겨야지 나도 좋고 우리 의뢰인도 좋을테니 말이다.

 

 

 

/문일환 변호사

경남회·법률사무소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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