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직군은 시대의 변화상을 투영한다. 군사 정권 시절에는 국방부 출입기자가 모든 정보의 꼭대기를 만졌고, 부동산 투기 광풍이 불었던 90년대엔 건설사 출입 기자실이 인산인해였다. 반면 검찰은 대검 중수부 출범 이후 주요 출입처로 강고한 지위를 이어가고 있다. 정권이 바뀌어도 이 조직의 힘은 방향성만 달리 할 뿐 언제나 톱 뉴스거리였다. 어쩌면 현대사에서 거의 유일무이하게 힘센 출입처의 지위를 이어가고 있는 곳일 수도 있다.

이런 검찰도 역사의 뒤안길을 생각해야 하는 시절이 왔다. 정치권에서 어떤 최종 결과물을 내놓을지 몰라도, 검찰의 독점적인 수사종결권과 지휘권 약화는 기정 사실로 보인다. 헌법이 보장한 소추권을 뺏길 리는 없겠지만, 공수처ㆍ마약청 등 어떤 형태로든 기소 권한이 분산될 공산도 크다. 일부 검찰 특수부는 살아남겠으나, 국정ㆍ사법 농단과 같은 초대형 거악 척결 수사까진 어려울 가능성 역시 높다.

그 변화의 시간이 감지되자 벌써부터 검찰 안팎에선 “당신들이 힘 있는 검찰의 마지막 출입기자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중앙지검에만 언론사마다 2~3명씩 출입 기자를 두는 현재 시간이 곧 추억이 될 거란 취지다. 기사가 나오지 않는 곳에 기자가 존재할 이유가 없기에, 일견 그 말은 합리적 예측으로 들린다. 지난 9년 서초동 생활. 밤낮 없이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대형 사건으로 몇달씩 정시 퇴근은 꿈도 못 꾸는 3D 삶이 강제 정산된다니 서운하기도 후련하기도 한 마음이다.

그러나 복잡한 개인 감정과 별개로 검찰 기자의 소멸은 당분간, 단호히 반대한다. 검찰 기자들이 대단해서도, 어깨에 힘 주고 살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현재 검찰은 여전히 견제와 감시가 매우 필요한 조직이라는 사실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부쩍 ‘피의사실 공표’라는 방패 뒤에 숨어 취재 거부가 많아지는 검찰은 여전히 그들의 치부를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다. 수사에 비협조적이었던 특정인이 무혐의 처분을 받자 혐의명만 바꿔 기소해 ‘무죄 확정’이라는 망신을 당한 게 최근 검찰이며, 불리한 건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 말 못한다”라면서 수사 진행에 도움이 될 정보는 슬쩍 흘리는 조직 또한 지금의 검찰이다.

공수처 등이 생기면 검찰도 달라질까.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을 맡았던 대검 진상조사단 행태를 보면 희망 보단 더 높은 수준의 검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애매한 출입 문제로 느슨했던 기자들에게 조사 정보를 개인 친소 관계에 근거해 넘겼다는 의혹부터, 비검찰 법조인과 검사 사이의 알력과 탁상공론까지. 기자가 있다고 모든 내부 비위가 없어지지 않겠지만, 기자의 부존재는 공수처 등 독립 수사기관의 해이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언론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건 자유다. 하지만 정권을 봐주려던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를 다시 촉발시킨 것도 검찰 기자였고, 돈 봉투 만찬을 밝힌 것도 검찰 기자였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귀찮은 우리가 정 보기 싫다면 검찰이 바뀌면 될 일이다. 검찰 신뢰만 회복되면 작금의 시대 흐름에 따라 검찰 출입 기자는 자연 소멸된다. 바람직한 그 날이 빨리 오길 바라지만, 그렇지 않다면 ‘마지막 검찰 출입기자’를 실제로 보는 것은 아주 먼 미래가 될 것이다.

 


/정재호 한국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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