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술을 자주 마시지 않는다. 한달에 2~3번 정도에 불과하고, 대부분 저녁 식사하면서 반주로 마신다. 기분이 좋거나 즐거울 때만 술을 마신다. 우울하거나 화가 날 때는 전혀 술이 받지 않는다. 젊었을 때는 술맛을 몰랐다. 그저 취하는 기분이 좋았고, 취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런데 점차 나이를 먹어가면서 술맛을 알게 되었다. 30대에는 당시 양주 폭탄주가 유행인 까닭에 너무 많이 마셔 위스키 향이 정말 싫었다. 그런데 지금은 위스키 스트레이트 한잔을 털어 넣었을 때 입 안에 퍼지는 향과 그 짜릿함이 너무 좋다. 그래서 위스키를 온더락(On the Rocks)으로 마시지 않는다. 맥주도 좋아한다. 부드러운 거품과 시원한 청량감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음식에 잘 어울리는 술은 역시 와인이고, 그 맛과 향도 술 중에서는 으뜸이다. 약간의 취기는 기분 좋은 감정을 더 부풀려 준다.

와인은 마음속에 내리는 낭만의 비다. 인 비노 베리타스(In Vino Veritas). 와인에는 진실이 담겨 있다.

창 밖에 비가 내린다. 유리창에 빗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손에 잡히는 와인을 따서 와인 잔에 따른다.

와인의 풍부한 아로마(Aroma)를 깨우기 위해 스월링(Swirling)을 하자 와인 잔에 와인의 눈물이 흐른다. 스월링은 와인을 마시기 전 와인 잔을 돌리는 것을 말한다. 편안하게 잔의 바닥이나 다리(스템, stem)를 잡고 반시계방향으로 여러번 돌리면 된다.

그 과정을 통해 와인은 산소와 빠르게 만나게 되고, 병 안에 웅크리고 있던 와인의 아로마는 꽃처럼 피어난다. 잔을 스월링한 후 가만히 두면 와인이 잔 안쪽에서 줄무늬로 흘러내리며 흔적이 생기는 마랑고니(Marangoni) 효과가 나타나는데, 이를 와인의 눈물이라 한다. 눈물이 끈적하고 느리게 흘러내릴수록 와인의 바디감과 알코올의 도수가 높고, 질감은 전유나 크림처럼 꽉 찬 느낌에 가깝다.

한 모금 입에 넣는 순간 눈물이 흐른다. 와인의 눈물보다 내 눈물이 더 끈적거리고 질퍽거린다. 그 눈물은 성냥불을 가져다 대면 타오르는 높은 도수의 술처럼 뜨겁고 깊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별거 아닌 일에도 쉽게 감동을 하고 눈물이 난다. 젊었을 때는 전혀 눈물을 흘리지 않았는데 말이다. 감정에 충실하면서 눈물을 펑펑 흘릴 때 마음속은 공허함이 아니라 충만함으로 가득 채워진다. 그것은 인생의 아름다움과 삶의 존엄성에 대한 깊은 그리움과 아쉬움일 것이다.

슬픔을 느끼기 때문에 삶의 맛을 알게 되고, 영혼을 채우는 기쁨을 발견하게 된다. 비오는 날 와인의 눈물이 내게 가져다주는 사소한 행복이다.

 

 

 

/윤경 변호사

더리드 공동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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