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의 시대다. 언제 어디서나 소통을 중시하는 분위기는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소통을 요구한다. 나를 표출하고픈 욕망이 낳은 기술적 풍요는 소통을 위해 만든 도구가 그 내용보다 우월한 것으로 치부한다. IT 시대의 그늘일까?

이러한 시대의 한가운데서, 특히 말과 글이 난무하는 변호사 직역에서 오히려 침묵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은 무모한 도전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과잉표출 대신 침묵하기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느 직역과 다른 사내변호사의 특유한 업무환경에 기인한다.

회사는 대립당사자 아닌 다양한 역학관계와 이해조율이 필요한 ‘복잡계’여서 성급히 아는 것을 말하기보다는 모르는 것에 침묵하는 것이 더 큰 장점이 되고, 사내변호사는 때론 침묵의 형태로 비밀유지의무를 다할 것이 요구되기도 한다.

영화 ‘마진 콜(2011)’의 회의 장면은 현실적이면서도 인상적이다. 위기관리책임자(데미 무어 분) 옆에 앉은 이름 모를 사내변호사는 회의 주재자의 의사진행을 방해하지 않는 탁월한 사유의 시선으로 말의 공백을 채운다. “잠깐 내 말 좀 들어봐요! 그게 아니에요! 거 봐요, 내 말이 맞죠?”식의 호시탐탐은 찾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어느 순간 모두 간과하기 쉬운 점을 적시에 꼬집어 단호한 어조로 전달한다. 결정적 순간 구사된 침묵으로 의사결정의 수준을 앞세우고 스스로는 주변부로 물러나는 사내변호사의 절제를 드러내는 명장면이다.

물론 준법경영 최전선에 있는 사내변호사가 책임을 완수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발언권 행사를 마냥 삼갈 수 없다.

그럼에도 현명한 자의 침묵은, 지식 있는 자의 논증보다 훨씬 가치 있다는 지혜는 사내변호사에게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경력에 비례하여 차츰 발언의 기대도 높아지는 사내변호사들에게 침묵의 기술은 한번쯤은 점검해 봐야 할 고급 실무감각이자 간과하기 쉬운 균형감각이 아닐까 싶다. 최고법무책임자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일 것이므로.

 

 

/이강훈 변호사

서울회·두산밥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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