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학기 초만 되면 ‘꿈’을 묻는 시간이 늘 있었다.

꿈이 뭐냐 물으면 다들 한결같이 대통령이나 과학자 같은 직업을 이야기했기 때문에, 나도 선생님이나 피아니스트 같은 여자아이들이 많이 쓰는 직업군을 썼던 것 같다.

조금 더 자라 인생의 추상적인 목표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 나이가 됐을 때쯤, ‘행복한 삶’과 같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다가 마침내 결정했다. 내 삶의 목표는 ‘내가 존재함으로써, 나로 인하여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되는 것’으로.

그래서 학창시절엔 종군기자나 중앙아프리카 난민을 돕는 수녀가 되는 거창한 꿈을 꾸며 장래희망란에 ‘세계 평화’라고 적어 넣기도 했었다. 그 때문인지 20대는 온전히 그 방향을 찾아다녔다. 국회의원실, 신문사 그리고 정책연구원을 거쳐 마침내 변호사라는 직역에 발을 내디뎠다.

사실 처음 변호사라는 직업을 택했을 때에는 방향을 찾던 20대의 연장선이라고 막연한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내 첫 법률사무소의 대표님께서는 1심에서 변호를 맡았던 피고인이 금전적 어려움으로 항소심에서 사선변호인 선임을 포기하자 무료 변론으로 도움을 주고, 피고인이 막 출산한 아이를 구속 상태로 돌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주기도 하셨다.

현 사무실의 대표님께서도 오랜 법조생활 동안 굵직한 사건들을 많이 담당해오셨음에도, 상대적으로 작은 사건들 하나하나 모두 ‘측은지심’으로 대하여 주고 계신다.

그 사건들이 당사자들에게는 얼마나 큰 고통인지 십분 이해하고 완전히 의뢰인의 편에 서 주시는 것을 보고, 변호사라는 직업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됐다.

변호사법 제1조 제1항과 윤리장전 전문에는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나는 아직 이 직업이 내 몸에 꼭 들어맞는 옷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발을 뻗은 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안수지 변호사

서울회·오세인 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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