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가 필요해!” 법원 출입기자로 일하면서부터 이 말을 깊이 공감한다. 법정에 서는 상당수가 대화로 문제를 풀지 못해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학교폭력 사건을 취재할 때마다 싸운 아이들보다 더 일을 키우는 듯한 부모들의 분노가 안타까웠다. 누군가에게서 비롯된 응어리를 한번이라도 제대로 풀었다면 법정을 찾는 이들의 삶이 달라졌을까 궁금해진다.

최근 서울고등법원의 한 재판부에서 ‘치료적 사법’ 개념을 적용해 치매 환자와 알코올중독자를 조건부로 석방하는 대신 그들이 정신질환 치료받도록 해야 한다며 ‘치료 구금’을 시도하기로 해 화제를 모았다. 치매와 과대망상 속에 아내를 살해하고, 술에 취해 아내를 폭행한 사건들이었는데, 이들이 형기를 다 채운 뒤 다시 가족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게 핵심 이유였다. 범죄를 저지른 아버지를 두고 자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렸지만 비록 늦었더라도 가족들의 힘으로 치료와 회복을 할 기회가 주어졌다. 같은 재판부에서 생활고로 자녀들과 동반 자살을 하려다 한 아이를 숨지게 만든 아이 엄마를 석방해, 남은 두 자녀를 돌보게도 한 일도 있었다. 재판부는 피해자이면서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엄마가 어떤 노력을 해나가는지를 보여줄 것을 보석 조건 중 하나로 삼았다.

지난 4월부터 경찰청도 회복적 경찰 활동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관계 회복이 필요한 사이에서 일어난 범죄에 대해 당사자끼리 화해하게 하고 이를 토대로 처분하거나 양형에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다. 6월 말까지 접수된 35건 가운데 완료된 13건 모두 조정(화해)에 성공했다고 한다. 80대 노모를 부양하느라 경제적 어려움이 컸던 50대 여성이 어머니와 함께 세상을 떠나겠다며 번개탄을 피운 사건도 있었다. 세 남매 중 막내딸인 여성은 부양의 부담을 자신에게 지운 형제들과 열 시간 넘게 대화를 나눈 끝에 각자의 형편을 이해하면서 마음이 풀어졌다. 존속살해 미수 혐의로 처벌받겠지만 가족들은 그녀를 용서했다. 동급생끼리의 학교폭력 사안이나 친구의 지갑을 슬쩍 훔친 사건들은 대화의 효과가 더욱 컸다고 한다.

법원에서 꾸준히 ‘회복적 사법’을 위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일부의 실험에 가깝다. 경찰은 10월까지 시범을 마치고 내년부터 전국에 회복적 경찰활동을 도입할 계획이다. 법대로, 절차대로 처리하면 될 것을 몇번에 걸쳐 이야기를 듣고 기회를 준다는 게 결코 쉽지는 않아 보인다. 그래도 부디 성공했으면 한다.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장 간단한 해법일 수 있는 대화의 능력이 더 많은 곳에서 발휘되길 바란다.

 

 

 

/허백윤 서울신문 기자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