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2018. 9. 13. 선고 2016다255125 판결 -

1. 개요 및 쟁점

보험회사가 생명보험계약이 민법 제103조 소정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해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보험계약자를 상대로 보험계약의 무효확인을 구하고, 보험수익자를 상대로는 보험계약이 무효임을 전제로 이미 수령한 보험금을 부당이득으로 반환청구한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다. 이 사건도 보험계약이 무효인 경우 보험회사가, 보험계약자 아닌 보험수익자를 상대로 그가 수령한 보험금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된 사안이다.

 

2. 원심판결(광주고등법원 2016. 9. 9. 선고 2016나10949 판결)의 요지

타인을 위한 보험계약은 보험계약자와 보험수익자가 다른, 제3자를 위한 계약의 일종이다. 제3자를 위한 계약관계에서 낙약자와 요약자 사이의 법률관계를 이루는 계약이 무효이거나 해제된 경우 계약관계 청산은 계약 당사자인 낙약자와 요약자 사이에 이뤄져야 한다. 원심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낙약자가 이미 제3자에게 급부한 것이 있더라도 낙약자는 계약무효 등에 기한 부당이득을 원인으로 제3자를 상대로 그 반환을 구할 수 없다는 판례를 들어, 보험회사의 보험수익자를 상대로 한 부당이득반환 청구를 명한 제1심 판결을 취소했다.

 

3. 원심판결의 이론적, 실제적 부당성

가. 보험사고가 발생한 경우 보험금을 수령할 보험수익자가 보험계약자 이외의 자로 지정된 생명보험을 타인을 위한 생명보험계약이라 하고, 이는 제3자를 위한 계약의 일종이다. 제3자를 위한 계약에 있어 요약자(보험계약자)와 제3자인 수익자(보험수익자)의 내부관계를 대가관계라 하고, 대가관계는 요약자와 낙약자(보험자) 사이에 맺어지는 계약의 성립 및 효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점 요약자와 낙약자 사이의 원인관계인 보상관계가 계약의 내용을 이루고, 낙약자는 보상관계에서 생기는 항변권으로 제3자인 수익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는 점(민법 제542조)과 구별된다.

나. 그런데, 타인을 위한 생명보험계약의 경우, 통상의 제3자를 위한 계약의 경우와는 달리, 요약자와 제3자인 수익자 사이에는 대가관계가 존재하지 않고, 인적 특수성으로 말미암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적인 제3자를 위한 계약의 경우는, 요약자와 수익자 사이에 청산돼야 할 대가관계가 있는 점과 구별된다(갑이 을에게 지급해야 할 돈이 있으므로, 갑이 그 채무자로 하여금 자신에게 지급하지 말고 을에게 대신 지급해 달라고 요청하는 형태).

다. 제3자를 위한 계약의 경우, 낙약자와 요약자 사이에서만 기존의 법률관계를 청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거기에 수익자인 제3자를 끌어들일 필요는 없는 것이고, 원심이 원용한 대법원 2010. 8. 19. 선고 2010다31860, 31877 판결이, 제3자를 위한 계약관계에서 낙약자와 요약자 사이의 청산은 계약 당사자인 낙약자와 요약자 사이에 이뤄져야 하고, 낙약자가 이미 제3자에게 급부한 것이 있더라도 낙약자는 계약 무효 등에 기한 부당이득을 원인으로 제3자를 상대로 그 반환을 구할 수 없다고 판시한 것도 이러한 의미에서 이해할 수 있다.

라. 그러나 타인을 위한 생명보험계약의 경우는 요약자와 제3자인 수익자 간 대가관계가 존재하지 않아 청산할 어떠한 법률관계도 없는 점(제3자를 위한 계약에 있어서는 요약자와 제3자 사이에 일정한 법률관계가 존재하나, 타인을 위한 생명보험계약의 경우는 수익자 지정행위 외에 어떠한 경제적 이해관계가 있다고 볼 수 없다), 만일 원심의 논리대로라면 보험회사는 보험계약이 무효인 경우 수익자를 상대로 한 부당이득반환 청구가 좌절되고, 보험계약자 또한 부당이득을 얻은 바가 없으니 그를 상대로 한 반환청구도 거절돼 기이한 결과가 초래되는 점, 반사회적 행위로 체결된 보험계약의 보험수익자에게 그 계약을 근거로 수령한 보험금을 반환하지 않고 그대로 보유하게 하는 것은 반사회적 행위로 얻은 이익을 향유하도록 하는 결과가 돼 법감정에도 반하는 점 등에 비추어보면, 원심 판단은 법이론 면으로나 건전한 법감정에도 반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4. 대상판결의 요지 및 의의

대상 판결은, 보험계약자가 타인의 생활상의 부양이나 경제적 지원을 목적으로 보험자와 사이에 타인을 보험수익자로 하는 생명보험이나 상해보험 계약을 체결해 보험수익자가 보험금 청구권을 취득한 경우, 보험자의 급부는 보험수익자에 대한 보험자 자신의 고유한 채무를 이행한 것이고, 따라서 보험자는 보험계약이 무효이거나 해제됐다는 것을 이유로 보험수익자를 상대로 그가 이미 보험수익자에게 급부한 것의 반환을 구할 수 있고, 이는 타인을 위한 생명보험이나 상해보험이 제3자를 위한 계약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달리 볼 수 없다고 판시해, 원심 판결을 파기했다.

일부 하급심은 이 사건 항소심 판결과 같은 논리로 보험수익자를 상대로 한 부당이득반환 청구가 가능한 지를 두고 혼선을 겪은 바 있다. 대상 판결은 보험계약이 무효인 경우, 보험수익자를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청구가 가능하다는 이론을 최초로 제시했다. 다만 대법원이 이론적 근거를 상론하지 않은 채 결과만을 판시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급심이 대법원 판결을 곡해해 맹목적으로 따를 경우 빚어지는 혼란은 매우 크다.

 

 

 

/이한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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