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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선]법감정과 대원칙
유호정 MBN 기자  |  uhojung@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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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5호] 승인 2019.07.08  09: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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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성폭행범을 감형한 판사 파면하라.”

10살 초등학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30대 남성이 2심에서 대폭 감형을 받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이 글은 지난 1일 기준으로 16만명을 넘는 동의를 얻었다. 1심은 피고인에게 미성년자 강간 혐의를 적용해 징역 8년을 선고했지만, 2심은 원심을 깨고 징역 3년으로 형량을 대폭 줄였다. 13살 미만 미성년자 강간죄가 인정되려면 폭행이나 협박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증명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판단이었다. 대신 폭행과 강압이 없었다고 해도 피해자가 너무 어려 성폭행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취지의 미성년자 의제 강간 혐의를 적용했다.

유일한 증거는 A양의 경찰 진술 녹화본이었다. A양은 “직접 폭행이나 협박을 당하진 않았다”고 진술하지만, 조사관이 “그냥 누르기만 한 거냐”고 묻자 고개를 끄덕인다. 이에 2심은 반항이 현저히 곤란한 정도의 폭행·협박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성인지 감수성이 결여된 판결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10살 아이에게 성인과 같은 수준의 구체적인 진술을 요구하는 것은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상당수 판사들은 일부 비판에 회의적이다. 한 판사는 “성인지 감수성 결여로 피해자 진술을 배척했다기 보단, 판단을 내릴 진술 자체가 부족하다고 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부장 판사는 2심 재판부가 A양 어머니 진술은 전문 진술이어서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한 것에 대해 “이는 소송법 원칙인 만큼, 함부로 비난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재판부가 강간 혐의에 대해 무죄를 내리기까지 고민한 흔적들이 역력하다. 재판부는 검사에게 A양을 증인으로 신청할 것을 권유해 법정 진술을 들으려 했고, A양에게 국선 변호인을 선임해주며 증인 출석을 최대한 설득했지만 끝내 A양은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아이가 당했을 고통을 생각하면, 법정에서 다시 피해 사실을 진술하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에 대해서 백번 천번 공감한다. 폭행과 협박 여부를 떠나 아이를 성폭행한 가해자를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렇다고 명확한 증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정황과 사정을 고려해 유죄 판결을 내려달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다.

법정에선 종종 이런 딜레마를 발견한다. 하지만 ‘합리적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는 형사재판의 대원칙이다. 열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면 안 된다는 대원칙과 열명의 범인도 놓치지 않으면 좋겠다는 국민 법감정 사이에서 판사들은 끊임없이 고민할 것이다.

/유호정 MB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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