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저녁, 한국여성변호사회에서 제공하는 ‘무료 영화시사회’에 우리는 샌드위치 도시락을 받아 들고, 이선희 변호사님, 안귀옥 변호사님 등 전설과도 같은 선배님들을 뵙고 함께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세상을 바꾼 변호인’

미국 여성 연방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원제는 ‘온더 베이시스 오브 섹스(On The Basis of Sex)’ “성별에 기초한”이라는 뜻인데, 여성의 법적 지위 평등을 위한 법률 투쟁을 표현한 제목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70년대, 인종에 기초한 차별은 위헌임을 인정하면서도 “성별에 기초한” 차별은 다른 것을 다르게 규정하는 것일 뿐, 평등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여기던 미국 법정에서 긴즈버그는 “성별에 기초한” 차별이 위헌임을 주장하였고, 결국 변화를 만들어 내었다.

이 영화를 배급하는 곳에서 영화의 원작 포스터에 있던 단어, 예를 들어 “영웅적인(heroic)”이란 단어를 “러블리한”으로 바꾸는 등 여러 단어들을 이 영화의 본래 취지를 망각하게 하는 표현으로 바꾸어 한국어 포스터를 만드는 바람에 한동안 여성계의 반발을 샀고, 황급히 이를 수정하고 사과하였던 에피소드도 있었다.

한국에서의 제목 ‘세상을 바꾼 변호인’은 여자라는 이유로 로펌에 취직하지 못하고 법학교수가 되었던 주인공과, 같은 법조인이자 대단히 성공적인 세법 변호사가 된 남편과의 대화에서 나오는 표현이다.

“당신은 세상을 바꿀 변호사를 가르치는 교수이니 충분히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라는 말에 주인공이 화를 내며 답한다. “바로 지금 내가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요.”

여성법조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 영화만큼 절절하게 와 닿는 영화가 또 있나 싶을 정도로 우리는 모두 감동받았다.

영화가 끝나고도 우리는 우리가 느낀 감동, 눈물, 영화가 재생시킨 우리 삶의 기억들을 나누느라 긴 저녁을 보냈다.

1세대 여성법조인들이 출산 후 일주일만에 남자동료들의 업무 분담이 미안해서 출근했다는 이야기, 두 아이의 엄마라는 이유로 원하던 로펌에 취업하지 못했던 나의 경험, 대형 로펌에서는 여성변호사가 이혼하면 오히려 일에 집중할거라 기뻐한다는 엽기적인 소문들….

영화 내내 긴즈버그 대법관의 슈퍼우먼같은 맹활약은 감탄스러운 존경을 불러일으켰지만, 동시에 지금도 계속되는 여성법조인들의 고군분투는 다시 한번 우리를 아프게 하였다.

여성대법관을 지내셨던 어느 선배님이 “우리는 일하러 나오면 비서가 커피도 갖다 주고, 책상에 편히 앉아 일하니 마치 휴식과 같이 느껴지는데, 도대체 남자들은 밖에서 뭘 했다고 집에 오면 피곤하다고 꼼짝도 안 하는거지?”라며, 오래 전 어느 자리에서 농담을 하셔서 우리 모두 박장대소했던 적이 있었다.

우리 사회도 이제는 많이 달라졌나? 아니면 이제 시작인가? 변호사로서 나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무엇을 했나?

 

 

/이재숙 변호사

서울회·법무법인 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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