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를 저지른 가해자가 피해자와 합의를 시도했으나 여의치 않을 때 피고인이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방안으로 형사공탁제도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는 법관이 형을 감경해주거나 집행유예를 고려하는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형사 피고인으로부터 공탁을 하고 싶다는 요청을 많이 받습니다. 그런데 형사공탁을 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알아야만 합니다.

현행 공탁규칙 제20조 제2항 제5호에 따르면 공탁을 할 때 피공탁자의 개인정보를 반드시 기재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형사공탁의 경우, 위와 같은 규정이 공탁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합의할 의사가 없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개인정보를 제공하여 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일선 법원에서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주민번호 등 개인정보를 취득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나아가 피해자 초본까지 피고인에게 요구하는 등 강한 요건을 부과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최근 피해자로부터 어렵사리 개인정보를 넘겨받아 직접 법원에 공탁서를 제출했는데, 피해자의 초본을 발급 받아와야 한다는 이유로 공탁 신청이 반려된바 있습니다. 이미 피해자의 정보를 모두 취득해 갔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의 보정명령 없이 피해자 초본을 피고인이 발급받으라는 것은 너무 무리한 요구이며, 합의가 어려운 경우를 전제로 열어둔 형사공탁제도 취지에 반하는 것입니다. 다행히도 해당 사건에서는 피해자로부터 초본을 전달받아 공탁을 했는데, 지금도 형사공탁은 쉽지 않다는 것을 되새기는 계기가 됩니다.

이처럼 현행 형사공탁 제도는 실무적으로 큰 제약이 있어 점차 사문화 되고 있습니다. 형사공탁 취지 및 목적에 반하는 법원의 무리한 요구는 시정돼야 하며, 본래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요건을 완화하거나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둘 필요가 있습니다.

법·제도 정비를 통해 형사공탁제도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김용석 변호사

서울회·법률사무소 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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